아골(고통) 골짜기-소망의 문 (2:14-3:5)

2012-06-12 화요일

고통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바로 그 곳이 새로운 소망이 시작되는 곳임을 알 수 있을까(2:15)?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있으면서, 그 징계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선지자 미가처럼 똑똑히 볼 수 있을까(7:9)?

하나님을 떠나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징계를 받으면서(2:13) 저들은 하나님을 알 수있을까(2:20)?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의를 비처럼 내리실 때(10:12), 마침내 저들이 그를 알게 될 것이다.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될 것이다.

 

사람이 풍요를 좇는 것이 어찌 죄가 될 것인가?

그러나 풍요를 좇다 하나님을 놓치고, 풍요의 종이 된다면 그것은 죄다.

죄란 길을 잃음이다. 여행과 방황이 다르고, 모험과 떠돎이 다르고, 쉼과 안주가 다르고, 소망과 욕망이 다르듯, 길을 벗어나는 것과 길을 개척하는 것은 다르다. 광야를 방황하는 것과 광야에 길을 내는 것은 다르다. 그 다른 자리에 서는 것이 죄다.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떤 것이든 주인의 자리에 들어서게 되는 순간, 죄가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자유는 사라지고 속박이 온다. 주인 됨이 사라지고 종 됨의 인생이 시작된다.

그것이 죄라면 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cf.1:21. 20:3ff).

그가 나를 만물의 주인으로 세우심을 알고, 하나님이 걸어 다니시는 길을 따라 나 또한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1:26. 8:5-6).

주인으로서 만물을 섬기며(아바드), 보호하는 자(샤마르)‘로 사는 것(2:15)이 사람의 의로움이다.

으로서 만물을 섬기며 그것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고 사는 것이 이다, 죄에 빠짐이다.

 

그들이 죄에 빠진 시일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벌을 주실 것이다(13).

그러나 이는 그들을 새롭게 하는 정화의 시간이 될 것이다. 아골 골짜기는 소망의 문이 될 것이다.

 

벌의 내용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을 광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다(2:3.6.7.14).

그들을 꼬셔내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시겠단다(14).

손에 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하시고는, 광야 그곳에서 그들에게 포도원을 주시겠단다(15).

광야에서 길을 내고, 광야에서 강물을 내시겠단다.

그것이 없으면 죽을 것 같던 것들이 다 사라지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저들은 오히려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금 은, 포도주, 곡식, 권력, 큰 집을 가지고도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다른 주인들(바알들)을 섬기며 으로 살던 저들이,

그 아무 것 없이도 부족하지 않은 주인으로 살도록,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데리고 나가신단다.

그들이 주인들에 사로잡혀 종 노릇한 만큼의 시간이 그들을 참된 주인으로 세우기 위해 소요될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의 선포대로, 이스라엘은 호세아 왕의 치세에 망한다. 앗수르에 의해 온 세상으로 흩어진다. 

스불론 납달리, 이방의 갈릴리흑암에 앉은 땅, 광야의 땅에서 그러나 하나님은 빛을 비추실 것이다.

예수는 광야가 되어버린 땅, 갈릴리에서 저들에게 의, 공평, 무한한 사랑, 긍휼을 나타내실 것이다.

고통의 골짜기는 소망을 열어 제치는 문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3:1). 호세아는 고통스러운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그 고통(아골)의 골고다가 내게 소망의 문이 되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