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하나님(야고보서 5장 7절~12절)  - 2012년 4월 29일 주일 묵상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안다. 땅이 내는 귀한 열매를 얻기 위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나무가 또는 곡식이 스스로 열매를 맺도록 매일 같이 얼마나 많은 손이 가는지, 이른비와 늦은비를 맞아야 하는지, 시절을 견뎌야 하는지, 안다(7). 하지만 인생이라는 농사를 한번 밖에 지을 수 없는 우리는 마음이 급하다. 때가 되었는데, 싹이 나오지 않고, 나온 싹이 너무 연약하고, 삐딱하게 자라는 것 같고... 하루만 손을 놓아도 잡초가 순식간에 밭을 뒤덮고... 한 해를 꼬박 지나야 맺히는 열매라면... 그 기다림은 결코 녹녹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때로 우리에겐 강한 약속이 필요하고, 강한 모델이 필요한가 보다. 야고보가 ...한껏 엄중한 목소리로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마음을 강하게 가져라! 주의 강림(파루시아)이 가깝다(8). 원망하지 마라. 심판주가 문 밖에 이미 오래 전부터 서 계시다(9). 곧 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이다. 선지자를 봐라(10). 욥을 봐라(11). 인내하는 자에게 우리가 복을 빌어주지 않더냐?(11), 우리 주님은 가장 자비하신 분이니 그분은 고통을 통과하고 있는 자에게 얼마나 더 복을 빌어주지 않겠는가? 그러니, 마음이 급하다고 맹세하지 마라. 맹세 한다고 속성으로 열매가 맺히는 것 아니고, 맹세 한다고 겪어야 할 추위와 바람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12)"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배긴 익숙한 농부의 손을 가진 야고보가 편지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말에 힘이 있고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친 손에 비하면, 예수님의 못박힌 손에 비하면, 야고보라고 어찌 감히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겠는가? 농부 하나님! 창조 이래 지금껏, 나무 스스로가 열매를 맺도록 기다려온 인내가 얼마인가? 흘리신 땀이 얼마인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거칠어지는 손을 들여다 본다. 맺고 있는 열매가 무엇인지, 나의 마음은 얼마나 커져 있는지(인내=마크로튀미아=큰 마음), 매일의 수고를 귀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곁에 함께 자라가는 동료들에게 나는 복을 빌어주는 욥의 하나님인지, 아니면 고통에 괴로움을 더하는 친구들인지... 누군가의 열매를 위한 수고로 박힌 굳은 살은 있는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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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을 노래하라 (야고보서 5 13~20)

- 2012 4 30일 월요일 묵상

고난은 기도를 낳고, 기쁨은 찬송을 낳는다(13).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고난이 원망을 낳고, 분노와 절망과 어리석음을 낳을 수도 있다.  

기쁨이 자기 자랑을 낳고, 교만을 낳고, 고통하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 아닌 멸시를 낳을 수도 있다.

기도와 찬송으로 이끌어지지 못한 고난과 기쁨은 자칫 을 낳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1:15).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마음의 옷깃을 다잡고, 무릎을 꿇는 기도의 자세를 취해도 마음이 둔감해지고, 눈이 둔감해 지기도 한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에겐,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 동지들이 있다. 교회가 있다(14).

 

때론 교회가 더 큰 짐이 되기도 한다. 병든 자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기도 하고, 죄를 고백하는 자를 정죄해버리기도 한다(19). 그러면 길 잃은 발걸음은 교회 밖을 향하고, 미혹된 길로 행하여 더 깊은 늪에 빠지기도 한다. (메 게노이토! 그렇게 되지 말지어다!)  하지만 교회의 주인인 예수님은 죄인의 구원을 기뻐하신다. 고난 당하는 자의 기도를 듣고 그를 일으키시길 기뻐하신다(15).

 

고난이나 기쁨 중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교회가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 되려면 잊지 말고 따라야 할 명령(!)들이 있다. 기도하라(13a), 찬송하라(13b), 교회의 장로들에게 사정을 알려라(14a). 주의 이름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라(14b), 서로의 잘못을 고백하라(16a),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16b).  기도하라는 명령이 3번 연속 나온다. 자기 사정을 고백하고 알리라는 명령도 두 번이나 나온다. 그리고 찬송하라는 명령이 한번 나온다. 찬송하라는 명령은(프살레토) ‚시편을 노래하라라고 의미심장하게 옮길 수도 있으리라. 고난과 고통 중에 부르짖고 기도하던 시인이 마침내 주의 구원을 경험하고 기쁨으로 부르는 노래 - 공동체가 함께 기뻐 예배하며 부르는 노래 - 시편그 시편을 함께 노래하며 살아가는 공동체(20)! 야고보의 땀과 꿈과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