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가인, 선악에서 죄로 ( 4:1-15)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분노와 절망을 마주하게 된 가인에 대해(6) 하나님은 그를 선하다 악하다 심판하는 대신, 그의 잘못된 판단과 거기서 비롯되는 죄에 대해 경고하신다(7).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보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보지 않으셨다(4). 하나님의 이러한 시선을 가인은 자신에 대한 외면으로 느꼈고, 그런 그는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의 이러한 시선은 가인에 대한 외면이었을까?


만일 하나님이 가인을 외면하고 그를 무시하고자 하셨다면 어찌하여 그는 이후 가인을 찾아와 그에게 경고하고 또 권고했을까(6-7))? 만일 하나님이 가인을 외면하고자 했다면 살인 이후 하나님은 어찌하여 가인의 생명을 지켜주셨을까(15)? 어찌하여 그에게 말 걸어 주셨을까(9)?


우리 성경은하나님이 아벨은 받고, 가인은 받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번역했지만, 본래 히브리어(‘샤아’)는 그 기본의미가주목하여 보다라는 뜻을 갖는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 제물은 주목하여 보았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주목하여 보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의 이러한 시선을 자신에 대한나쁘다는 판단으로 읽어내고, 분노하고 또한 절망한다.


가인의 분노와 그 절망을 보신 하나님은 이번엔 가인에게 그의 '시선'을 던져 그에게 '말 걸어' 오신다. “너는 무엇 때문에 분노하며, 무엇 때문에 얼굴을 떨구고 있느냐?” 이렇게 물으시는 하나님이 파악하시는 가인의 분노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좋다/나쁘다에 대한 그 나름의 잘못된 판단이며, 이어지는 하나님의 경고는 그의 잘못된 판단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죄에 대한 것이었다(7).


7절의 말씀은네가 선하게 살았다면 얼굴을 들겠지만, 네가 선하게 살지 않았으니 죄가 너를 지배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 과거의 가인의 악행에 대해 꾸짖는 것이 아니라, 가인의 미래의 행동에 대해 경고하고 권고하는 중이다.


‘선을 행한다라고 번역된 말은좋음에서 파생된 동사의 사역형이다. ’좋아하게 하다, 기뻐하게 하다 -> 좋게 대하다, 잘 대해주다 -> 좋게 만들어 주다가 기본의미다. 여기에서옳게 행하다, 좋은 것을 행하다라는 뜻으로 이행해 간다. 7절은만일 네가 선하게 대한다면 네 얼굴을 들겠지만, 네가 선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죄가 너를 덮치려 할 것이다라고 옮길 수 있다.


7절은 가인의 과거 행동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그의 행동을 경고하고 있다. 죄가 그를 덮치게 되는 이유는 그가 '선하게(좋게)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과 아벨과 하나님에 대해 좋게(옳게) 대하지 못할 때, 죄가 그를 노릴 것이고, 그를 덮칠 것이고, 그를 삼킬 것이며, 그를 지배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자신과 아벨과 하나님에 대해 좋게 대할 때, 그는 자신의 분노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마침내 그의 머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가인이 자신의 분노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사실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이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눈여겨보지 않고, 아벨을 눈 여겨 보았는지 물을 수 있었고, 그분의 대답을 통해 자신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께묻는대신스스로그에 대한대답을 찾아간다. ”하나님은 아벨은좋다하고, 나는나쁘다하셨다.” - 가인은 분노하고, 또한 절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가인에게물어오신다. “너는 왜 분노하고, 너는 왜 절망하느냐?” 그러나 가인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 말하는 대신 가인은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8), 아우 아벨에게 자기 판단을 따라 행동한다. 가인은 아우 아벨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고, 홀로 판단하고, 홀로 말하고, 홀로 행동한다(8). 가인이 듣게 되는 아벨의 소리는 이후 그의 핏소리일 뿐이다. 


이리하여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선/악의 판단에서 죄로의 이행이 시작된다. 자신과 아벨과 하나님에 대해좋게 대할수 없었던 가인, 하나님의 시선에서 자신에 대한 외면과 거부를 읽어내고, 나쁘다는 판단을 읽어 내는 가인, 그의 선/악 판단을 기회로 죄가 가인을 사로잡고, 그를 지배하고, 그리하여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자리까지 그를 몰아간다.


이런 일들은 비단 가인에게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에돔 출신으로유대인의 왕이라는 공식 칭호를 사용하던 헤롯에게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는 동방 박사들의 물음을 자신에 대한공격과 위협으로 듣고 그에 대해 아이들을 죽이는 것으로 답했던 헤롯이나,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이란 여인들의 노래를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듣고 다윗을 죽이는 것으로 답했던 사울이나,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을 자기에게 상처 주려는 자들로 여기고 그들을 죽이겠다는 라멕이나,  그 어디서든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선/악의 판단에서 죄로의 이행이 발견된다.


보고 판단하되, 묻지도 듣지도 않고, 혼자 말하고 행동하여 스스로와 이웃과 하나님 모두에 대해나쁘게 대하는자들은 결국 그를 덮치는 죄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보고 판단하되, 묻고 듣고 함께 말하고 행동하며, 스스로와 이웃과 하나님 모두에 대해좋게 대하는자들은 결국 그의 얼굴을 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