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0장 – 살아서도, 죽어서도... (수 20:1-9)
 
12지파의 땅 분배가 이루어지고 가장 먼저 취해진 조치 중 하나는 도피성의 확정이다. 북쪽의 갈릴리 게데스, 중앙의 세겜, 남방의 헤브론 이렇게 세 곳이 도피성으로 정해진다(7).

도피성은 부지중에 실수로 살인한 자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고자 세워진다(3,9). 도피성으로 피한 자는 회중들 앞에 서서 재판을 받게 되고(6) 그 판결의 결과에 따라 의도를 가지고 살인한 것으로 확인되면 죽음에 넘겨지고, 그 의도 없음이 확인되면 피의 보복자들의 손에 넘겨지지 않고 도피성에서 살게 된다. ...

비록 그의 의도 없음이 확인되었다 할지라도 누군가의 피를 흘린 자는 단지 재판을 통해 방면되지 않고, 오직 대 제사장의 죽음과 더불어서만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6).

“피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다“(민35:33). 그러한 땅이 ‘살인한 당사자의 피‘ 없이도 속함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은 대제사장의 죽음을 ‘살인한 당사자의 피흘림‘으로 ‘여겨‘ 그 피흘림을 ‘대속‘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 부지중 살인한 자는 온전히 ‘속해져‘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누가 있어 누군가의 죄를 대신 담당할 수 있을까? 누가 있어 누군가의 생명의 값을 대신 갚아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그의 살아 있을 때의 대속적인 제사 행위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의 죽음 그 자체가 이스라엘 가운데 흘려진 무죄한 피흘림을 짊어지고 그것을 속하는 대속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대제사장은 그의 죽음을 통하여서도 누군가의 핏값을 대신 짊어지고 누군가의 인생에 자유를 주는 그런 존재였다.

살아도 자기 배만 위하고, 죽어도 자기 식구만 위하는, 그리하여 많은 억울한 피울음을 낳는 지도자들로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자신의 죽음으로도 누군가의 짐을 대신하여 벗겨주는 그런 존재 그런 인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지막을 향해가는 2013년 아침을 멈춰 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