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이만한 믿음 ( 8:5-13)


 

행함이 강조된다 여겨지는 마태복음엔 생각보다믿음이란 말이 많이 등장한다. ‘믿음 8, ‘믿다 11, ‘믿음이 작은 자 4번 나타난다. 6:30절의믿음이 작은 자들(올리고피스토이)’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면 마태복음에서믿음은 이곳 백부장의 종을 치유하는 사건에서 처음 등장한다. 처음 등장하는 믿음이 그냥 믿음이 아니라, 예수를 놀라게 했던이만한 믿음’, ‘이렇게 큰 믿음이다(10). 그 믿음에 뒤이어 등장하는 믿음은 다시금 풍랑 이는 바다에서 두려워하는믿음이 작은 자들인 제자들의 믿음이다(8:26).

 

작은 믿음에 대한 기사 사이에서 마태의 독자/청자는 백부장의이만한 믿음을 만나게 된다. 두 본문의믿음이 작은 자들에겐 공통된 특징이 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로 인해 마땅히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이다(6:30;8:26).

 

물론 죽을 것 같이 풍랑이 이는 바다의 현실과 하나님이 내 삶의 현장에 함께 계신다는 믿음의 사실 사이엔 큰 간극이 놓여 있다. 나아가 예수가 배에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풍랑에 흔들리는 오늘 또한 우리의 일상적인 믿음에 큰 간극을 만들어낸다. 당장 내일 먹거리가 없는 현실과 하늘 아빠가 우리 필요를 아신다는 믿음의 사실 사이에도 큰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채우는 것이 있다, 바로권위.

 

예수를 놀라게 한 백부장의 믿음엔 바로 이권위에 대한 바른 이해가 담겨있다(9). ‘예수는 말씀만으로도 병을 고칠 수 있다고 그가 믿었기에 그의 믿음이 놀라웠던 것이 아니라, ‘권위에 대한 인정이라는 차원에서 믿음을 이해했기에 그것이 놀라웠던 것이다.

 

“나도 남의 권위(‘엑수시아’)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하라 하면 합니다. 그러니 나으라 말씀하시면 나을 것입니다”(8-9).

 

권위란 무엇인가? 때로 부모는 자식의 '?'에 대해 그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함 없이도 어떤 일들을 요구한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자로서, 그 시간을 지나지 않고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부모는 그럼에도 자녀에게 '권위'를 따라 어떤 일들을 요구하고, 겪게한다.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그가 말하면 그것은 따를만하다.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그가 말하면 그것은 그렇게 되어진다.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그가 말하면, 그것은 분명 옳다. 지금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이 모든 어려움의 끝에서 마침내 그는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12:1-3;8:16;10:13)‘라는 반응을 낳게 하는 힘, 그것이 권위다.

 

욥기에서 욥은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한다(23:3-9). 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인 욥기 38~41장은 한마디로나는 창조주다라는 말이다. 욥의 호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권위였다. 그 권위가, 의인들이 넘어지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 가운데서도(24:1-21;7:15) 마침내 하나님의 의가 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복을 누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능하게 한다(cf.24:22-25;42:12;8:12-13;37:11;73:17).

 

 "나는 '권위'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말씀하시면 온 천하가 순종합니다. 당신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며, 나으라면 났습니다. 온 천하와 더불어, 나 또한 당신께 순종합니다. 당신을 신뢰합니다" 백부장의 '이만한 믿음'이 내게도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