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리바 물과 광야 40년 (민 20:1-13)

 

민수기 20장의 므리바 물 사건은 다만 출17장의 므리바-맛사 물 사건의 반복이 아니다. 출17장의 므리바-맛사 물 사건은 출애굽 초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의해 주도된다. 홍해, 마라의 쓴물, 만나 이후 이스라엘은 본격적으로 광야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이 마주하는 환경은 광야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커녕 애굽 땅보다 좋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을 마주한다. 기대의 배반이 낳는 당혹스러움이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하는 곳이 정말 이곳 광야가 맞나'하는 물음을 낳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반석에서 물을 내심으로 ‘그렇다‘고 대답하신다. 

 

이에 반해 민수기 20장의 므리바 물 사건은 광야 40년을 건너온 자들의 고단한 삶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난다. 출17장이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신‘ 여호와를 찬양하는 미리암의 노래 이후 마주치게 된 광야에서 물이 없음으로 겪는 어려움을 말한다면, 민수기 20장은 1세대 출애굽 지도자 미리암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마주하는 광야에서 물이 없음으로 발생한 사건을 다룬다. 

 

출17장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냐'는 원망에 무게 중심이 있다면(출17:3), 민20장은 '출애굽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파종할 곳도 포도도 무화과도 없는 이 악한 광야를 걸어야 하느냐'는 한탄에 무게 중심이 놓인다(민20:4-5). 

 

광야 40년, 어느덧 자기 부모보다 나이가 많아진 지금, 그들은 아직도 광야다. 40년을 하나님과 함께 걸어왔다. 맞다. 여호와께서는 늘 그들 가운데 거하셨다. 그건 이제 더 이상 시험 거리가(맛사) 아니다. 그러나 그러면 무엇하랴? 그토록 오랜 시간 하나님과 함께 살았어도 마주하는 환경은 씨앗 하나 뿌릴 수 없는 광야인 것을(5)... 미리암을 광야에서 장사지내는 오늘까지도 물 없는 광야를 걸어야 하는 이스라엘은 광야가 정말 징글맞다. '차라리 내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었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아직까지 이 광야를 걸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한 백성의 탄식에 대해 하나님은 백성을 꾸중하거나 책망하지 않는다. 바위를 향해 물을 내라 말하면 바위가 물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오늘도 아무런 기대도 소망도 가질 수 없는 순간에, 어떠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어떠한 누구도 그 일에 어울릴 것이라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우고 그들을 먹이고 그들로 마시게 하실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많은 물이 나온다. 하나님은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걸어야 하는 길은 여전히 광야다. 그늘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광야의 로뎀나무(대싸리 나무) 아래 앉은 엘리야처럼 그들은 지쳐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아서 지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에도 지쳐있다. 아니 하나님이 함께하며 이 길을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지쳐있다. 

 

그러한 백성을 향해 모세는 ‘반역하는 자들('마라')‘이라 부른다(10). ‘마라‘... 출애굽 후 그들이 처음 만났던 써서 먹을 수 없었던 물 ‘마라‘처럼, 그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여전히 마음이 쓰고 괴롭다. 그들의 쓰디 쓴 마음은 그러나 그들 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이 모세의 마음을 상하게(‘마라‘)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급하게 말하였다“(시106:33)고 성경은 말한다. 모세도 마음이 상하고, 지쳐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광야‘는 ‘하나님‘이 함께하신 광야다. 광야이기에 하나님은 더욱 그들 가운데 계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힘입어 매일을 살았다. 이제 다시 가데스다(1). 38년 전 그 때처럼 그들은 그곳에서부터 가나안으로의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그럼에도 백성은 여전히 ‘하나님‘의 광야가 아닌, 하나님의 ‘광야‘를 걷고 있다. 백성들의 지친 마음과 여전한 원망에 모세도 마음이 상하고, 마음이 짧아진다. 

 

그리하여 므리바 물에서 백성으로 말미암아 분노했던 자는 - 시106:32개정역과 달리 -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였다. 모세는 백성을 향해 ‘반역한(‘마라‘) 너희‘라 부르지만, 하나님은 모세와(민27:14) 아론을 향해(민20:24)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였다고(‘마라‘) 한다. 

 

하나님의 사람,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 모세는(민12:3), 므리바 물 사건에서 하나님의 마음의 자리가 아닌 백성의 마음의 자리에 선다. 하나님과 다투는(므리바,마라) 백성과 더불어 모세 또한 하나님과 다투는 자리에 선다. 그러한 그들을 향해 그러나 하나님은 반석을 치던 모세에게 응답하셨던 출17장의 그 날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동일하게 응답하신다. 많은 물이 바위에서 나와 그들과 그들의 짐승들이 충분히 마시게 하신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하고, 지칠 대로 지친 백성과의 광야 40년 –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길가의 돌멩이 같이 확실함에도 걷고 있는 곳은 아직도 광야라는 사실이 낳는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과 다투는 그들에 대해 하나님은 출17장의 광야에서의 처음 그날처럼 바위에서 물을 내심으로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신다(12,13;민27:14). 그는 이곳 광야에 그들 가운데 계시며,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시고, 여전히 그들을 먹이며, 여전히 그들의 목마름을 해갈하시며, 여전히 그들의 상한 마음을 만지시고 치료하신다(cf.출15:26). 

 

출애굽 후 제 40년 1월 미리암이 죽는다. 5월 1일 아론이 죽는다. 11월 1일 모압 평지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41년 1월 10일 요단을 건너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고, 1월 14일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킨다. 크고 두려운 광야를(신1:19) 걷는데, 어찌 지치지 않고, 어찌 탄식하지 않으며, 어찌 마음이 상하고 괴롭지 않으랴.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금 자신의 신실함(‘에무나‘)을 보이시며, 믿을 수 있는 반석으로 당신 자신을 나타내신다(12). 믿고, 조금 더 따라오라고, 아직 걸어갈 험한 길이 조금 더 남아 있다고 하신다. 그들이 광야를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오로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일 뿐, 그들의 신실함이나 모세의 위대함 때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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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장 1절 - 첫째 달?

 

민20:1의 미리암의 죽음의 시점으로 언급된 첫째 달은 출애굽 후 40년 첫째 달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 민20:22에 기록된 아론의 죽음 – 비록 민20:22 자체는 아론의 죽음의 시점을 명기하지 않지만, 민33:38은 아론의 죽음을 출애굽 후 40년 5월 1일로 명시한다. 호르산에서의 아론의 죽음을 서술하는 민33:38 바로 앞의 민33:36-37은 이스라엘의 일정을 신광야-가데스-에돔변경-호르산으로 밝힌다. 따라서 40년 5월 1일 호르산에서의 아론의 죽음 바로 앞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던 시점이 출애굽 후 40년 1월이라 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2) 민수기 20장 1절의 첫째 달이 출애굽 후 40년 첫째 달일 때, 민수기 20장은 출애굽 1세대 지도자인 미리암, 아론 그리고 모세의 죽음을 아우르는 것으로 1세대의 죽음과 2세대의 가나안으로의 여정의 시작을 나타내는 경첩과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민수기는 26장의 두 번째 인구조사를 통해 1세대의 죽음과2세대의 등장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26장에서 비로서 2세대의 가나안 입성 작업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민수기 20장 1세대 지도자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은 호르마 점령 – 요단 동쪽 점령(아모리 왕 시혼, 바산 왕 옥) – 요단 건너편 모압 평지로의 이동(22:1) 등 광야에서의 방향성 없는 방랑을 마치고 가나안을 향하여 움직여간다. 따라서 1세대의 죽음과 2세대의 등장은 민수기 26장에서의 두 번째 인구조사에서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민20장 출애굽 1세대 지도자들의 죽음과 더불어 이미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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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장 1절-13절 (사역)

 

1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첫째 달에 신 광야에 도착했다. 회중이 가데스에 머물렀다. 거기서 미리암이 죽었다. 그녀가 거기에 묻혔다. 2 회중에게 물이 없었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여 모였다. 3 회중이 모세와 다투었다. 그들이 말했다. “여호와 앞에서 우리 형제들이 죽었을 때 우리가 죽었더라면! 4 어찌하여 당신들이 여호와의 회중(카할)을 이 광야로 데리고 와서 우리와 우리 짐승이 여기서 죽게 합니까? 5 어찌하여 당신들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려서 우리를 이 악한 장소로 데려왔습니까? 여기는 씨도 뿌릴 수 없고 무화과나 포도 석류도 없으며 마실 물도 없지 않습니까?“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에서 떠나 회막 입구로 갔다.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8 “지팡이를 취해라. 너와 너의 형제 아론이 회중을 모아라. 너희는 그들의 눈 앞에서 바위를 향해 말해라. 그러면 그것이 그의 물을 줄 것이다. 네가 그 바위로부터 그들에게 물을 줄 것이다. 네가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 것이다.“ 9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 같이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취했다. 10 모세와 아론이 바위 앞으로 회중을 불러모았다.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반역하는 당신들은 들으시오, 이 바위에서 우리가 당신들을 위하여 물이 나오게 해야 하겠소?“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다. 물이 많이 나왔다.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셨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의 눈 앞에서 나를 거룩하게 하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너희가 이 회중을 인도해 들이지 못할 것이다.“ 13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던 므리바 물이다. 그가 그들에게 거룩함을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