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2- 거짓 선생들 (벧후 2:1-22)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에 대해 경고한다(1). 그들이 거짓 선생인 이유는 그들이 예수의 주 되심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1). 예수의 주 되심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인 선생으로 행세하고 있으니 이들이 거짓선생이다. 이들은 물론 입으로는 예수를 주로 인정한다(20,21). 그러나 이는 다만 자신들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위장일 뿐, 이들의 주인은 자신의 육체이다(3,19).

이들이 거짓 선생인 이유는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기 때문이다(15,18,19). 이들은 아마도 ‘자유의 복음‘을 이야기했던 듯하다(19).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바울의 자유가 아니라 육체의 소욕을 따라 절도 없이 행하는 무절제와 방탕이었다(2,10). 그러니 그들은 시대의 풍조에 휘둘려 세상의 여론을 따라 가르침을 바꿔갔다. 바람에 몰려가는 안개처럼, 스스로 내는 물이 없는 샘처럼 휘둘리며(17) 자기 잇속만을 챙기는 것으로 만족했다(3). 

이들이 거짓 선생인 이유는 그들이 영적인 세계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10). 그들은 영적인 세력이나 권세를 비웃고 조롱했다(10,11,12).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에 더 큰 권세와 권위가 있음을 이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 뿐이고, 사람이 자기 인생의 최종 결정권자라 생각했다(1,10). 말 못하는 나귀에게조차 보이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이들은 무지했다(16). 

이들이 거짓 선생인 이유는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12). 복음의 진리가 향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예수께서 왜 사람을 구속하셨는지(1) 그 이유와 목적에 대해 이들은 무지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자들에 의해 이끌어지는 교회와 성도는 결국 사람들의 비방을 받지 않을 수 없다(2).

이들이 거짓 선생인 이유는 자신들의 삶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자들이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20-22). 자유를 가르쳤으나 본인 자신 육체의 소욕에 굴복한 종으로서 살고 있었다(19).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없는 가르침이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적은 거짓말 같은 일일 것이다. 

거짓 선생들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모습은 한마디로 경건이었다(1,6,9). 불경건은 예수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1), 경건은 예수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님은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경건한 자를 멸하실 것이다(9). 비록 지금 불경건한 거짓 선생들이 횡행한다 해도, 그런 자들을 향한 심판은 지체된 적이 없었고, 그들의 멸망 또한 잠든 적이 없었다(3). 

주께서 다시 오실 그 때(1:16,3:4,10,12,14) 주께서 모든 경건치 않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 분 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말 못하는 나귀에게조차 보였던 주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미친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16) 돌아봐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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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2장 1절-22절 (사역)

1.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났던 것과 같이 여러분 가운데에도 거짓된 선생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산 주인을 거부하며, 멸망의 파당(멸망 받아 마땅한 파당 또는 멸망으로 끝이 날 파당)을 가만히 들여올 것입니다. 이들은 급박한 멸망을 자취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2. 많은 이들이 그들의 무분별한 생활을 따를 것이며, 그러한 모습들 때문에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입니다. 3. 탐욕 속에서 그들은 교묘한 말들로 여러분을 속여 자기 잇속을 차릴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 대한 심판은 옛적부터 이미 지체 되지 않았고, 그런 자들의 멸망 또한 잠든 적이 없습니다. 4. 왜냐하면 천사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끼지 않고 오직 지옥에 던져 사슬 같은 어둠 속에 가두어 심판 때를 위해 지키게 하셨다면, 5. 그리고 옛 세상을 아끼지 않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노아의 여덟 식구만을 보호하시고, 불의한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면, 6. 또한 소돔과 고모라 도시들을 재로 만들어 파멸을 선고하여 불경건한 자들에게 닥칠 일에 대한 증거를 삼으셨다면, 7. 부패한 행동 속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 의해 고통 받는 의인 롯을 건지셨다면, 8. -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의로운 자가 (저들이 행하는) 불법한 행실들로 인해 그 보고 듣는 것으로 날마다 의로운 마음을 괴롭게 하였기 때문에 - 9. 주께서는 경건한 자들을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들을 형벌 받을 심판의 날까지 지키시는 분이시되, 10. 특별히 더럽혀진 욕망으로 육체를 따라 행하는 자들과 (영적) 권세를 경시하는 자들에게 그리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감히 스스로가 주인인양 생각하는 자들로서 (신적인) 영광을 비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1. 반면 천사들은 보다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자들에 대한 비방의 판단을 주님 앞에서 감히 내어놓지 않습니다. 12.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과 같아서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것을 비방하며 그들의 멸망 중에 그들 또한 멸망할 것입니다. 13. 불의의 삯으로 불의를 행하는 자들, 낮에 흥청거리는 것을 기쁜 일로 여기는 자들, 점과 흠인 자들. 이들은 여러분과 함께 잔치하면서도 자신들의 속임수 가운데서 연회하며 14. 음욕이 가득한 눈으로 죄 짓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영혼을 유혹하는 자들, 탐욕에 길들여진 마음을 가진 자들 곧 저주의 자식들입니다. 15. 그들은 바른 길에서 떠나 길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불의의 삯을 사랑했던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모방하였습니다. 16.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불법함에 대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목소리로 책망하여 그 선지자의 미친 짓을 저지했습니다.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며 바람에 몰려가는 안개입니다. 이들은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있을 뿐입니다.(/이들에게는 칠흑 같은 어둠이 준비되어 있을 뿐입니다). 18. 왜냐하면 이들은 헛된 자랑으로 큰 소리치며, 잘못된 삶을 사는 자들에게서 겨우 빠져 나온 자들을 육체의 욕망으로 꿰어내어 방탕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19. 사람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약속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멸망의 종들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20.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우리의 주님이요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부끄러운 일들에서 떠난 후에, 다시 이러한 것들에 굴복한다면, 그들에게는 처음보다 나중형편이 훨씬 나빠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21. 왜냐하면 그들에게 전해진 거룩한 계명을 알고 난 후에 거기에서 돌이키는 것 보다 의의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 그들에게 차라리 낫기 때문입니다. 22. “개는 자기가 토한 데로 돌아간다.“ 그리고 “돼지는 씻은 뒤 다시 진창에 뒹군다“는 진실된 속담이 그들에게도 들어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