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사르밧 과부, 엘리야 그리고 하나님 (왕상 17:1-16)

 

길르앗의 디셉 사람이라는 소개 말고는 다른 아무 설명도 없이 엘리야가 갑작스레 등장하여 앞으로 수년간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고, 아무 맥락도 없는 등장이다. 전형적인 선지자 소명 문구는 오히려 이 선언 다음에 나타난다(2,8). 임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어 있으라는 것이고 또한 사르밧에 가서 머물라는 것이다. 무슨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나 가르침의 말씀이 임한 것이 아니라 아합에게 전한 말로 목숨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을 엘리야를 보호하고 그를 먹이겠다는 말씀이다.

 

엘리야가 앞으로 있을 가뭄을 선언했을 때는 최소한 그릿 시냇가의 물이 마르지 않았던 때였다. 그 말은 우기에 형성된 계절천(‘나할‘)의 물이 아직 채 마르기 전이었다는 말이다. 그럴 때에 가뭄을 얘기하는 엘리야의 말은 미친 사람의 헛소리 정도로 가볍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기임에도 엘리야의 선언 이후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으면서 목숨의 위협을 느꼈을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2). 디셉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을 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으라는 것이다(3). 이는 사실 전혀 어렵지 않은 명령이었고, 엘리야는 말씀대로 행하여 그릿 시냇가로 간다(5). 어려운 명령을 받은 자는 엘리야가 아니라 실은 까마귀들이다(^^.4). 하나님은 까마귀들에게 엘리야의 먹을 것을 공급하도록 명령하셨다고 말한다. 그 말을 엘리야가 얼마나 믿었을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엘리야는 나름의 식량을 챙겨서 사마리아를 떠나 그릿 시냇가로 찾아 들었을 것이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된다. 하나님은 아침과 저녁에 까마귀들을 통해 엘리야가 먹을 빵과 고기를 매일같이 공급하신다(6).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머물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겠지만 하나님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엘리야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분이심을 그로 믿을 수 있게 하신다(cf.24).

 

얼마 후 그릿 시냇가의 물이 마르자(7)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다시 임한다(8). 어떤 대단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라는 명령이다(9). 그러면서 하나님은 전에 말씀하셨던 것과 똑같은 문장으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과부에게 명령하여 엘리야에게 음식을 공급하게 하시겠다는 말이다(9).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먹이도록 선택하신 과부는 그런데 엘리사를 대접했던 수넴 여인과 같이 부유한 자가 아니었다. 마지막 남은 밀가루를 탈탈 털어 자기와 아들들이 먹고 죽으려고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여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먹이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인물을 통해, 사람들이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을 하신다.

 

그런 과부를 만난 엘리야는 그런데 그리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이미 까마귀를 통해 매일 두 번씩 수일 동안 자신을 먹이셨던 하나님께서 그와 유사한 상황에 있는 과부를 통해 자신을 먹이시기를 기뻐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달한다(13,14). 엘리야의 말을 믿었다기보다 어차피 마지막 떡을 만들어 먹고자 했던 그녀는(13) 뜻밖에도 그릇의 밀가루와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런 일이 하루 이틀을 넘어 수일 간 계속된다. 그로 인하여 그녀 또한 엘리야와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임을 알아가게 된다.

 

모든 성경 인물이 그러하듯 엘리야 또한 처음부터 완성된 인물로 등장하지 않는다. 17장의 등장에서부터 19장 로뎀 나무 아래서의 낙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이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시키시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 첫 교육과정이 말하자면 17장의 세가지 사건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17장은 일종의 계시 사건이다. 계시 사건이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나타내 보이시는 사건을 말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1) 사람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을 2) 사람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을 통해 3) 사람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루심으로 그 이루어진 일이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음을 분명히 나타내는 방식으로 주어진다(곽면근 목사(더누림교회)). 이러한 계시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게 된다.

엘리야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만나며 살아가는 오늘은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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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장 1절-16절 (사역)

 

1 길르앗에 거주하는 자들 가운데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했다. “내가 그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말합니다. 내 입에서 내 말이 있지 않으면 이슬도 비도 이 수년 내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2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3 “여기서 떠나 너는 돌이켜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어라 4 그 시내에서 네가 마실 것이다. 내가 거기서 너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도록 까마귀들에게 명령했다“ 5 그가 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했다. 그가 가서 요단강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렀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 시내에서 그가 마셨다. 7 날들의 끝이 되어 그 시내가 말랐다. 그 땅에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8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러라. 보라, 내가 거기서 너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도록 한 과부에게 명령했다.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갔다. 그가 그 도시 입구로 갔다. 보라, 한 과부가 거기서 나뭇가지를 모으고 있다. 그가 그녀를 불러 말했다. “내게 마실 물을 그릇에다 조금 가져다 주실 수 있으신지요.“ 11 그녀가 가지러 갈 때에 그가 그녀를 불렀다. 그가 말했다. “내게 당신의 손으로 떡도 조금 가져다 주시면 좋겠습니다.“ 12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내게는 떡이 없습니다. 병에 기름 조금과 그릇에 밀가루 한줌이 있을 뿐입니다. 보십시오! 내가 나뭇가지 얼마를 모으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가서 나와 내 아들들을 위해 떡을 만들고는 우리가 그것을 먹고 죽으려고 하는 중입니다.“ 13 엘리야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가서 당신 말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그것으로 우선 나를 위해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 가져다 주십시오. 그 후에 당신과 당신의 아들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시지요. 14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면 위에 여호와께서 비를 주시는 날까지 밀가루 그릇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 병에 기름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15 그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행하였다. 그녀와 그와 그녀의 식구가 여러 날을 먹었다. 16 엘리야를 통해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대로 밀가루 그릇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끊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