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4장 – 약속과 현실 (창14:1-24)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따라(13:15) 아브라함이 선택하여 옮겨 온 헤브론은 가나안 온 땅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지역이다. 그 곳에서 약속으로 주어진 땅을 바라보며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그런데 그 땅에 전쟁이 일어난다. 당시 패권을 쥐고 있던 엘람 왕을 비롯한 북쪽의 네 나라와 요단 지역의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등 다섯 도시 국가 사이의 전쟁이다(1,2). 말이 그들 사이의 전쟁이지, 실상은 반역을 꾀한 자들에 대한 엘람의 응징이다(4). 소돔 등의 반역이 미칠 영향을 생각해서 엘람은 소돔을 바로 치지 않고 주변 나라들을 하나 하나 복속시키며 내려와 마침내 소돔 등을 응징한다(5,6,7,8).


아브라함은 아마도 가장 높은 지역인 헤브론에서 군대들의 이동과 전쟁의 소용돌이를 지켜봤을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약속은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인데, 지금 보이는 땅은 여러 강력한 나라들의 세력 다툼으로 인한 전쟁의 땅이다. 아브라함은 생각했으리라... 내게 주어진 약속은 뭔가? 엘람같은 제국은 물론이고 도시 국가 군주들에 비해 턱없이 초라한 세력을 가진 자신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런 아브라함이 전쟁에 끼어드는 일이 발생한다. 조카 롯이 사로잡혀갔기 때문이다(12). 롯이 아니었다면 아브라함이 이 전쟁에 끼어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약속과 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 이도 저도 아닌 갈등의 매일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에게 아들이나 다름 없는 롯에게 일이 생긴다. 가족에게, 식구에게 어려움이 생긴다.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전쟁에 참여한다. 밤을 틈타 기습한다(15). 약속의 땅의 경계인 단에서(15)... 하나님의 도움으로 ‘전투‘에서 승리하고 조카를 찾아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온다(16).


“천지의 주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셨다“(19,20)는 멜기세덱의 말에 아브라함은 그 얻은 것의 10분의 1을 그에게 주는 것으로 그의 말이 참됨을 인정한다(22). 말 한마디로 선심을 쓰는 소돔 왕에 대해(21) 아브라함은 얻은 것에서 아무 것도 취하지 않겠다 말하며 이 승리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에게서 주어졌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다(23). 다만 자신과 함께 했던 자들의 몫은 챙겨준다(24). 그야말로 멋있는 역할을 맡아 행한다.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아브라함에게 약속은 현실과는 관계없는 공허한 얘기가 되고, 현실의 삶과 신앙은 겹쳐지는 부분이 없는 관념 속의 이야기로 남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식 같은 롯에게 닥친 일로 인하여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던 두려움과 떨림의 밤, 그 쫓아감과 전쟁을 통해 약속은 여전히 볼품 없는 세력의 족장인 아브라함의 현실 속에서도 말 그대로의 현실이 된다.


아브라함은 그의 인생 전체를 통해 결국 막벨라 굴의 무덤 하나를 자기 소유로 가지게 되지만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은, 날지 못하는 거위들의 ‘우리는 날 수 있다‘는 자가 발전적 믿음이 아닌, 그의 삶의 현실이 된다. 믿음은 그 자신이 살아 낸 삶을 통해 자라간다. 삶의 위기와 두려움과 초조와 결단과 행동과 전쟁 속에 마주치고 만나게 된 하나님으로 인해 믿음이 자라간다. 얻은 재산과 승리의 명예가 아닌 천지의 주재를 찬양하는 한 사람 아브라함... 그의 믿음은 이제 눈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