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 사랑, 그 끝나지 않는 이야기 (마 22:34-40)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냐는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는 특별한 해석 없이, 오직 신6:5과 레19:18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답한다. 이 둘을 같이 연결하여 놓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율법과 선지자 곧 성경 전체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가 아마 처음이다. 유대 문헌에 비슷한 내용이 발견은 되지만, 이런 형식으로 말해진 적은 없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다. 놀랍게도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다. ‘이런 어마 어마한 신이 있으니, 그 신을 섬겨라’가 아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신명기 말씀에서 하나님은 ‘네 하나님’ 여호와(10,13), ‘너를 종 되었던 곳에서 이끌어내어 자유케 한 여호와'로(12) 불려진다. 유일하신 하나님은 다름아닌 ‘나의 하나님’이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가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지 않고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나의 것’을 가지고 ‘나의 하나님’을 사랑한다. “너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그에게 다 바쳐라”가 아니라, 네가 가진 것으로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다.


6살짜리 첫째 딸 아이와 한달 가량 떨어져 있던 때, 딸이 아빠한테 카톡을 보낸다.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나 아빠에게 편지했다.” “알았어, 아빠는 공부 잘해” “아빠, 사랑하는 내 아빠” - 민하가 아빠를 사랑한다. 자기의 것으로 사랑한다. 자기 마음으로, 자기 힘으로 사랑한다. 거창하고 엄청난 것을 이루어야 비로소 사랑인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나의 모습, 나의 마음, 나의 힘, 나의 생각… 나의 것으로 '나의 하나님'을 사랑한다 - 첫번째 계명이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39)


둘째도 그와 같다. 이웃 사랑이 하나님 사랑과 똑같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네 이웃을 너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런데 “원수를 갚지 말고, 형제를 원망하지 말고, 그들을 너처럼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다!”라는 문맥 속에 나타난다(레19:18). 눈에 띄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여호와다”라는 표현이다. 여기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선 레위기 19장 문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10,12,14,16,18)


모든 요구의 근거가 ‘나는 여호와다’라는 데에 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다. 나는 이러한 하나님이다. 너희의 하나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행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니 내가 너에게 행하는대로, 너도 형제에게 행하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네 이웃을 너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듯 네 이웃을 사랑하라”가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하듯,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이 된다. ‘자기 사랑’은 단순한 자기애가 아닌,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에서 시작된다.


사랑 받음으로 우리는 비로소 사랑한다. 하나님에게서 부모님에게서 형제 자매에게서 이웃과 친구들에게서 공동체 식구들에게서 받은 사랑이 크다. 그 사랑이 있기에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으로 인해 나 또한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있다. 받은 사랑만큼 사랑할 수 있기를.... 예수님처럼 성경을 이루는 자로 살 수 있기를...(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