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장 - 가나안 여인의 믿음 (마 15:21-28)

가나안 여인이 예수께 나아와, 흉악하게 귀신 들린 자기 딸에 대해 말하며,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한다(22). 예수는 그녀를 향해 "자녀의 먹을 것을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26). 그러니 말하자면 그녀를 개에 비유한 것이다. 이런 대접을 받으면 우리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7)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한다.

"당신 말대로, 이방인인 저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인 유대인이 아니니, 그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는 개와 같은 처지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다윗의 자손, 공평과 정의로 ‘만민‘을 통치하실 참된 왕, 참된 임금님 아니십니까? 그러니 당신의 은혜의 통치를, 개와 같은 저에게도 허락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것이다. ...

이 여인은 예수를 한 번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고, 세 번 주님이라 부른다.

가나안 여인과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사건 대해 이야기 하기 전, 예수는 밥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는 것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시비에 답해야 했었다(15:2). 똑같이 밥을 먹는 장면이다. 그런데 가장 깨끗하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 식탁에서 깨끗한 손으로 밥을 먹고 있는 유대인들, 하나님의 자녀라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따르면 오히려 그 속이 시커멓다(15:18-20). 그러나 그들은 손을 씻는 것으로(2),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

진정으로 계명을 지키고자 할 때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이다(8). '고르반'이라 말하는 것만으로 정당한 자가 된다 여기는 것이 아니라(5),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고자 한다면(6), 진정으로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진정으로 원수를 사랑하고자 한다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자기 안에 넘치는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겐 너무도 멀고 험한 사랑의 길을 마주하게 된다.

그 뿐이 아니다. 자기를 발견할 뿐 아니라, 자기에게 이미 베풀어진 은혜와 사랑을 또한 확인하게 된다. 사랑해보니, 내게 베풀어주신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고, 사랑해보니, 내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행할 때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되고, 사랑을 행할 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확인하게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은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몇몇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들은 정당하고, 권리가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유대인이고, 헬라인이고, 이방인이고,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살고 있다. ‘주인의 상에서 나오는 음식‘으로 배 불리고 있다. 그 사실을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유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자녀들은 모르고 개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애들은 밥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를 알지를 못한다. 나는 숙제를 했는데, 반찬이 왜 이따위냐며, 투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손을 씻었다, 숙제를 했다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해서 밥을 먹이는 자로 살아야 하는데, 그걸 안하고 나는 바르고 나는 의롭고, 재는 틀렸고 재는 더럽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해서 먹여보면, 보람을 느낄만한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불만과 끝없는 요구가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올라오는 분노를 마주하게 될 뿐 아니라, 그들과 방불한 자신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무한히 크심을 알게 된다. 마치 개와 같은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발견할 뿐 아니라, 그러한 자신을 자녀로 대해 주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

이방여인은 손을 씻는 것만으로 깨끗함과 정당함을 주장할 수 없는 자신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기댈 곳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주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뿐이다. 그 여인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부르짖는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엘레에손 메, 퀴리에!" 시편에서 수 없이 듣게 되는 부르짖음이다.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시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