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3 - 아침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 33:1-24)

 

학대하기만 했을 뿐 학대 당한 적 없고, 속이기만 했을 뿐 속은 적 없는 앗수르가 마침내 그가 학대하고 속이기를 그치자 마자 그 자신 학대를 당하고 속임을 당할 것이다(1).

 

학대와 속임은 다른 이들의 마음에 원한을 심는 법! 학대자가 힘을 잃는 순간 그 자신 원한을 심었던 자들의 학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학대하는 자나 학대 받았던 자 모두에게 비극이 아닌가? 학대의 악순환과 속임의 악순환그러나 세상은 누가 먼저 시작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학대와 속임(1), 노략과 탈취로(4) 가득하다.

 

힘으로 윽박지르던 앗수르의 전사가 평화 조약을 맺고자 분주하며(7), 그렇게 맺어진 약조는 앗수르의 힘이 쇠약해지자 헌신짝처럼 버려진다(8). 그러나 온 땅의 파괴자 앗수르가 어찌 배신을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으랴!(8).

 

실질적인 내용 없이 겉모습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분주한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하는 세상“(11a)에서,  살고자 호흡하는 것 자체가 서로를 삼키는 불이 되고 마는 학대와 약탈의 세상(11b)에서, 선지자는 참으로 씨알도 먹히지 않을 법한 길을 견고한 반석이라 제시한다. “의롭게 사는 사람,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일랑은 생각지도 않는 사람,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누군가의 피를 흘리려는 자의 음모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 악한 생각일랑 눈에 담기조차 피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거할 것이다“(15-16)

 

순진한 낙관주의자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들리는 이 말은 그러나 현실이 그러하기에 매일같이 아침마다 여호와의 팔을 구하며, 환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구원하실(2) (22), 하나님을 구하며 사는 자의(2) 말이기에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다. 선지자처럼 의를 행하며 입과 눈과 귀와 발을 다스리며 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15) 아침마다 여호와의 팔을 구하고, 그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 갈 수는 있으리라. 그리하여 시온에 살면서도 심판을 두려워하는 '죄인'이 아니라(14), 그 죄가 용서받은 강건한 자로서(24) 여호와를 '나의 왕'이라 부르며 매일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