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8장 - 사랑의 증거를 보이라 (고후 8:1-24)

 

"너희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한다"(8) - "너희의 사랑의 증거를 보이라."(24)

사랑은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니다. 세상에 미움만큼이나 감출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300데나리온, 웬만한 자동차 한 대 뽑을 수 있는 금액. 그런데 한 여인은 그 금액을 털어 예수의 발을 씻는다. 그녀의 사랑은 눈에 보인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인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다. 예수의 나를 향한 사랑은 눈에 보이고,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 또한 눈에 보인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천원짜리 하나 쓰지 않고, 자기의 시간 또한 내주지 않으며,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과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그 말은 거짓이거나, 천원자리도 되지 않는 사랑이다. 아니 그런 이기적인 욕망에 감히 '사랑'이란 말을 붙일 수는 없으리라.

바울은 지금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다(cf. 롬 15:25-26). 이 헌금은 다만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일뿐 아니라, 이방인 교회가 유대인 성도들을 통해 받은 영적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고(롬15:27), 자기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다(고후 9:13).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미 일년 전부터 이 일을 스스로 작정하고 결심한 터였다(10). 바울은 이제 그들이 이전에 결심했던 대로 그 일을 성취할 것을 권면한다(11). 그러면서 바울은 이 일이 그들의 사랑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라 강조한다(8,24). 예루살렘 연보에 대한 바울의 시각에서 볼 때, 그들의 연보를 통해 증명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다(9).

부요하신 이로서 나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라면(9), 스스로의 선민적 특권을 내려놓고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예루살렘 성도들의 은혜를 아는 자라면, 그리하여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극히 크신 은혜의 부요함을 아는 자라면 그는 마땅히 자기들에게 베풀어진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서 그들 또한 자기들의 사랑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은 그들의 극심한 환란과 가난 속에서 오히려 더욱더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다(2).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의 마음을 안다. 가난한 자가 자기에게 베풀어진 은혜의 크심을 안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의 복음에 대한 감사와 자신들을 사랑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눈에 보인다(5). 이제 바울은 이미 일년 전에 뜨거운 마음으로 '연보'를 결정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 안에 있는 사랑을 나타내라고 한다. 그들의 사랑의 증거를 보이라고 말한다(24).

사랑은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