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6월에 처음으로 구동독지역 지역에 있는 역사적인 한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니콜라이 (St. Nicolai)교회입니다. 루터교 교구 교회인 이 교회는 1165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교회인데 저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라이프치히에 있는 이 교회는 분단된 독일 통일의 거점이 되었던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통독 시절인 1982년 평화기도회를 매년 11월에 10인간 개최하여 통일의 기운을 지펴갔습니다. 젊은이들은 이 기도회가 계속 열리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평화기도회는 매우 월요일 오후 5시에 정기적으로 열리게 되었고 기도회는 기도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독 치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이주를 열망함에 따라 당국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이 기도회는 고통 받는 자들의 만남의 장소로 변해 갔습니다. 참여수가 늘어나면서 교회 마당은 이 불법 모임을 탄압하려는 동독 경찰들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9년 10월 9일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계속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600명이 넘는 공산당원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동서독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교회 밖 거리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에게로 전해졌습니다. 교회 밖에는 천여 명이 넘는 요원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탄압이 계속 되고 있었는데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체포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군대와 전투경찰 사복 경찰들이 시민들을 마구 구타하여 트럭에 태워갔으며 그 중에 수백 명을 낙인 찍어 정치수용소에 몰아넣었습니다. 교회 주변에서는 유혈진압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1989년 10월9일 이 교회에서 모였던 평화기도회에서 주교인 퓨러(Pfarrer C.Fuhrer)목사는 산상수훈의 팔복을 설교하면서 비폭력을 부르짖었습니다. 그 설교를 들은 공산당원들이 말씀에 큰 감동을 받으면서 나왔습니다. 산상수훈 강해 설교를 들은 후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에 이끌리어 교회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교회 밖 광장에는 또 다른 수천 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을 향해 동독 경찰들은 발포명령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무저항 비폭력의 평화 촛불시위가 바로 분단 독일의 통일을 성취한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동독 정부 중앙위원회 위원이었던 진더만(Sindermann)은 죽기 전 이날의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계획했고 모든 것에 대해 준비되어 있었지만 촛불과 기도에 대해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통일에 대한 갈망이 독일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기도의 불이 붙게 하였습니다. 이 뜨거운 기도의 불은 성령의 역사로 인해 동독 경찰의 마음을 움직여 몽둥이와 총을 놓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결국 매주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모여 평화를 위한 기도회가 독일 통일을 이루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기도는 임신과 같아서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 기도운동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이 살벌한 현장에 독일 통일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기도운동을 일으킨 퓨러 목사님과 독일 청년들에게 뜨거운 박수와 힘찬 격려를 보냅니다. 저는 이것이 동유럽의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저는 1989년 10월 성 니콜라이 교회를 가득 메웠던 기도의 함성이 다시 울려 퍼지기를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