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1866년 9월 5일 조선과 한사코 교역을 원하던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변에서 좌초되었다. 이 배의 선원들은 침략선 이라고 판단한 조선병사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이었다. 배에는 선교를 위해 조선에 입국하고자 하는 영국인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가 타고 있었다. 조선군은 솔가지와 땔나무를 여러 척의 배에 가득 싣고 셔먼호에 다가가 불을 붙여 일제히 배 안으로 집어던졌다.. 이 불이 화약에 옮겨 붙으면서 배 안은 순식간에 불길로 휩싸였다. 불길을 피해 강물로 뛰어든 선원들은 기다리고 있던 조선군의 창에 찔려 죽고 곤봉에 맞아 숨져 강물이 금방 핏빛으로 변했다.
이 와중에 배 위에서 백기를 들고 화염 속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강쪽으로 사력을 다해 책들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토마스 선교사였다. 죽음을 직감한 그는 ꡒ지저스 크라이스트ꡓ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있는 힘을 다해 육지쪽으로 성경책을 던졌다. 한 권이라도 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성경을 전하는 일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그는 한 권의 성경을 품에 갈무리한 채 강 언덕위로 끌어 올려졌다. 그때 토마스는 품에서 성경을 꺼내어 자기를 치려는 병사에게 주면서 전도를 하였다. 엉겁결에 성경책을 받아든 박춘권은 순간 마음이 이상한 감정으로 일렁거렸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토마스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기도를 올렸고, 마침내 병사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그때 토마스의 나의 27세였다. 이때 그에게서 성경을 받았던 박춘권은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장사포의 홍신길은 서가교회, 석호정 만경대의 최치량은 평양교회를 창설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성경을 뜯어 벽지를 바른 영문주사 박영식의 집은 장대현교회 예배처소가 되었다고 한다. 토마스는 최후의 순간까지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그가 남긴 씨앗은 열매가 되어 오늘날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토마스의 영혼의 향기는 계속하여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