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5아들 안에 있는 영생 (요일 5:1-21)

 

영생은 아들 안에 있다(1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 믿으면 됐지 무슨 예수를 믿어야 하느냐고 묻는 교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 곧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나타내셨다(10).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다만무한자, 전능자, 전지자, 선하고 의로운 자가 아니다.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을 제거해 버리면, 남는 것은 막연한 개념으로서의 '하나님'일 뿐, 그 때 '하나님'은 결국 각 사람의 욕망의 투영인우상이 되고 만다(21).

 

자기의 확장으로서 '하나님'을 상상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어떤 개념이나 이념이 아닌누군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나타내셨다.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평생을 그와 동행하며 그를 빚어가신 하나님, 그렇게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그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죄인을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 물과 피와 성령으로 자신을 보이신 하나님이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이지(6), 막연한무한자 '하나님'이 아니다.


니체는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가 원하는 것은사랑이라 말한다. 가장 적은 권력을 가진 자는자유를 욕망하고, 보다 많은 권력을 가진 자는정의를 욕망하나,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는 사람의 실수를 용납하고 허물을 덮어주며 자비를 베푸는 '사랑'을 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나타내신 사랑과는 정반대의 '사랑'이다.

 

니체의사랑은 사랑이 아닌 자기 확대이다. 그런 '사랑'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상대방의 소중함이 아닌자기 권력의 증대에 대한 감각일 뿐이다. 십자가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 한 사람의소중함이다. 하나님은선하고, 능하고, 강하고, 자비로운 분이라는 강력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분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분, 아브라함의 인생에 자신의 이름 전체를 걸어 놓으시고 그의 평생을 동행하시는 분으로서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아들 안에 영생이 있다. 하나님은 아들 안에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의 사랑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하나님의 위대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소중함이다. 삭개오를, 사마리아 여인을,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나병환자를, 수로보니게 여인을 소중하게 여기셔서 그들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 그들을 부활 생명의 누림으로 불러 들이시는 하나님,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다. 끊임없는 자기 확대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세상 속에서, 자기를 비워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 사랑하는, 그러니까 그의 평생을 책임지며 그와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아들 안에 있고, 그의 아들 안에는 영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