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행복이 아닌 영생 (요일 4:1-21)

 

90년대를 살았던 젊은 신앙인들 중 <사랑과 행복에의 초대>라는 책을 보지 않았던 이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책 이후로 기독교인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책들이 봇물 터지듯 출판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살다 보니 결혼은 사랑과 행복이란 말로 포장하기에는 훨씬 더 현실적인이었다. 한 돌도 안된 아이부터 한국 나이로 5, 8살 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전쟁터 같은 매일이지 '사랑과 행복에의 초대'는 아니었다.

 

예수 믿으면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 믿고 사는 삶의 행복은 사람들이 생각하는안락함과 동의어로 쓰이는 행복은 아니다. 사실 성경은 예수 믿는 자들에게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성경이 약속하는 것은 행복이 아닌 영생, 곧 생명과 삶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우리 안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살게되었습니다.“(요일4:9)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내어주신 이유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게 하기 위해서다. 행복을 안락함이 아닌-사는 것(well being)‘으로 정의한다 해도, 그것은 신약 성도들의 삶을 포괄하는 표현이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보다 근원적인 물음은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가 아니라누구와 사는가?‘이다. ‘누구와 사느냐왜 사느냐어떻게 사느냐를 다 담아 낸다. 복음의 약속은 하나님과 살고, 예수와 살고, 성령과 살고, 형제와 살되, 사랑으로 사는 삶인 영생이다(4:16).

 

영생은 아무런 갈등도 긴장도 어려움도 고통도 없는 무상무념의 상태의 지속으로서의지복/행복이 아니라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삶으로서 영생이다. 죽음에 넘겨지나 죽지 않고, 죽는다 해도 다시 사는 삶으로서 영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