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장 - 율법의 행위들이 아닌 믿음으로...(롬 3:1-31)


율법의 행위들에 근거하여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율법의 심판 아래 놓여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의란 관계를 전제한다. 관계가 먼저 성립되어 있어야 그 관계에 충실함인 의가 문제가 된다. 율법은 관계를 충실히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지 율법 자체가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무엇이 관계를 파괴하는 지에 대한 지식 곧 죄에 대한 지식을 주며, 무엇이 관계를 충실히 지켜내는지 의의 길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율법 자체나 율법을 지킴 자체가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불경건과 불의로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삼아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았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하나님은 그들의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심겨져 있어 율법이 보여주는 마땅한 삶의 길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썩어질 것들과 하찮은 것들에 빠져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어 살고 있지만 율법이 나타내는 마땅한 길을 모른다고 잡아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땅한 길을 나타내는 율법이 생명이 아닌 고통과 사망을 낳는 것이 사람의 현실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가지고,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들 자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생각했고, 몇몇 율법의 행위들을 하는 것으로 그 관계를 유지한다 생각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는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과 독립적으로 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길로서 율법이 주어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선하고 자비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정작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몇몇 율법의 행위들인 안식일, 음식규정, 할례 등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 여기는 착각과 오만이 오히려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의, 생명, 복, 영생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근거하여 주어진다. 하나님의 의가 범법한 자들을 찾아왔고, 하나님의 의가 메시야의 피로 사람들의 죄를 속했으며, 하나님의 의가 사람들을 자기의 것으로 부르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그의 신실하심을 믿는 자들, 그들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서게 된다, 의롭게 된다.


“사람은 율법의 행위들과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우리가 인정합니다“(28) – 사람은 안식일 규정이나, 음식 규정이나, 할례 등의 율법의 행위들을 지키는 것으로 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신실하심을 믿어 그 관계 안에 서는 것으로 의의 자리에 서게 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그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낳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그에 대한 사람들의 신실함을 낳는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하나님의 신실함)에서 믿음(=그에 대한 우리의 신실함)을 맺는다. "오직 의인은 믿음 곧 하나님의 신실함과(LXX) 그의 신실함으로(BHS)으로 산다."(롬1:17,합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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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 (사역)


1.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은 무엇이며 할례에는 어떤 유익이 있단 말입니까? 2. 모든 면에서 많이 있습니다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맡겨졌다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만일 어떤 이들이 (맡겨진 말씀에) 신실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신실하지 않음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효로 만드는 것입니까? 4.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되나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될 뿐입니다. “당신의 말로 당신이 의롭게 되고, 당신이 심판 받을 때에 당신이 이길 것입니다(LXX 51:4)“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5. 그러나 만일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이 의로운 분임을 확인시킨다면,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진노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이 불의하다 해야 할까요? - 내가 사람의 방식을 따라 말하고 있습니다. 6. -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말입니까? 7.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진리가 나의 거짓말로 더욱 풍성하여져서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여전히 나 또한 죄인으로 심판 받는다는 말입니까?“ 8. 우리가 이런 말들로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우리가 선한 일들이 오도록 악한 일들을 행합시다라고 말한다고 하는데, 그런 자들은 심판 받아 마땅합니다.


9.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유대인들이) 뭔가 나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든 헬라인들이든 모두가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고발하였기 때문입니다. 10. 다음과 같이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 “의롭지 않다. 한 사람도 (의롭지 않다).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12. 모두가 (바른 길에서) 돌이켜, 하나같이 쓸모 없어졌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 한 사람도 없다.“(cf.14:1-3;53:1-3;7:20)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그들의 혀로 그들이 속인다.“(5:9) “독사의 독이 그들의 입술 아래에 있다.“(140:3) 14.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한 말들로 가득 차있다.“(10:7) 15. “그들의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고, 16. 황폐와 비참이 그들의 길에 있고, 17. 평화의 길을 그들이 알지 못했다.“(59:7-8) 18. “그들의 눈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36:1)


19.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고 율법이 말하는 것은 율법 안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입이 닫혀지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들에 의해서는 어떤 육체도 그분 앞에서 의롭다 여겨지지 않을 것(143:2)”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깨달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21. 그러나 이제 율법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이에 대해) 증거합니다. 22.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3.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는데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5.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 흘림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속죄소로 세웠습니다. 이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기 위함이며, 전에 지어온 죄들을 용서하기 위함입니다. 26. 곧 하나님의 인내로 지금 이 때에 자기의 의를 나타내어 그분 자신 의로울 뿐 아니라 예수의 신실함으로 말미암는 자(/or.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 또한 의롭다 하는 분이 되기 위함입니다.


27. 그러니 어디에 자랑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떠한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행위들의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믿음의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28. 왜냐하면 사람은 율법의 행위들과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우리가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29. 또는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십니까? 이방인들의 하나님은 아닙니까? 아니요,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30. 할례자를 믿음에 근거하여, 무할례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할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31.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을 무효로 만드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