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 그의 나라를 구하며 오늘을 살다 (마 6:19-34)


들풀과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며 믿음을 논한다(26,28,30). 그냥 보라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것이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주의 깊게 관찰하고, 생각하고, 거기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심지도 추수하지도 곳간에 모으지도 길쌈도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기르고 먹이고 입히되, 부족함 없이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이다.


어려서는 아직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25). 사람은 태어나,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철이 들 때까지, 목숨과 몸이 아닌 음식과 돈 그리고 의복을 중히 여기며 살게 된다. 철이 들어서야 목숨이 중요하고, 몸이 중요하다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얼 먹고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과 함께 먹으며 살아가는가가 중요하고, 무엇을 입고 사느냐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인가가 중요하며, 아름답다는 것이 뭔지 아는 사람인가가 중요함을 알게 된다. 내일에 대한 염려나 과거에 대한 한으로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 통치(나라)를 신뢰하며 오늘을 사는 사람이냐가 중요함을 알게 된다.


내일을 염려하는 사람은 재물을 쌓고, 과거에 사로 잡힌 사람은 원한을 쌓는다. 사람들은 재물이 안전을 확보해 주는 힘이라 생각하여 재물을 쌓아 내일에 대한 권력을 갖고, 내일을 통제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은 내일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 내일은 내일의 것이다(34). 오늘, 지금 만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고, 사람은 오직 오늘을 살 뿐이다. 모든 사람들 앞에는 아직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오늘이 매일같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그 오늘을 내일에 대한 염려나 과거에 대한 한으로 흘려 보낸다면, 그래서는 평생을 살더라도 한 순간도 살지 않은 것이다.


공중 나는 새는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입힌다. 제비는 하루에 200번 이상을 둥지를 오르내리며 새끼에게 먹을 것을 먹이며 열심으로 오늘을 산다. 우리는 심고 거두고 창고에 모아 들이면서도 먹고 마시는 것을 염려하느라 오늘을 살지 못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기적처럼 열어주시는 매일 매 순간을 감사와 성실함으로 누리며 오늘 그의 아들과 딸로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의 나라를 구하며 사는 자의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