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5아홉 번째 복 ( 5: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 하였느니라."(마5:11-12)

선지자들이 박해를 받은 이유는 선지자들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이스라엘의 자신에 대한 기대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의 시각에서 이스라엘은 병들어 있고, 불의하고, 정욕과 욕망에 삼켜져 있고, 중독 되어 있고, 자유롭지 못하며, 어리석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하나님 아닌 다른 힘과 권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스스로 볼 때, 정당하고, 지혜롭고, 준비되어 있고, 풍요로우며, 열정적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너희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다고 선언하자, 무슨 미친 소리냐? 하며 그들을 배척하고 핍박한다. ...

예수를 믿는 자들 또한 세상에서 박해를 받을 수 있는데, 이는 그들이 인간의 현실을 사람들의 눈 앞에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난하다. 눈물과 한숨과 고통을 만들어 내며, 억압과 불의가 가득하고, 그래서 공의나 정의는 말라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몇몇 나쁜 놈들, 위에 있는 권세자들, 저 짐승 같은 놈들이 짐승 같은 짓을 해서' 그런 상황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가, 바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는 편에 정의가 있다 없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를 채울 수 없는 가난함 속에 있고, 가난함의 이유를 다른 이들에게서 찾으려는 모든 '정당한 자들'로 인해 울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매 순간 일어나는, 그리하여 하늘 말고는 바랄 곳이 아무 곳도 없는 상황 속을 살아가는(시37:9-11온유,프라에이스), 주리고 목마른 '가난한 자들(아나빔=가난한 자, 온유한 자, 곤고한 자, 억압 받는 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수에게 있어 인간은, 헤롯당원이든 바리새인이든 사두개인이든 열심당원이든, 모두가 다 회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예수는 죄인, 세리, 창녀, 흑암과 어둠에 앉아 울고 있는 자들에게 찾아가서 "네가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오면 하나님은 너를 받아 주신다"고 말씀하셨고, 가난하고, 주리고, 울고 있는 이들은 예수께 나아 왔다. 그들이 복 있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