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2 - 한도를 지키다 ( 22:1-30)

 

차도에 점선으로 그려진 선은 때에 따라 넘어갈 수 있지만, 실선으로 그려진 선은 넘어가서는 안 된다. 물론 때로 실선을 넘어가도 어떤 사고나 피해를 겪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실선을 자주 넘어가다간 반드시 큰 화를 당하게 된다. 본인 뿐 아니라 아무 잘못 없는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치게 된다. 그와 유사한 것이 바로 한도이다.

한도를 넘었지만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넘지 말아야 할 한도를 계속 넘다 보면 그것은 반드시 문제를 만들고, 결국 나 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에게도 큰 해를 끼치게 된다. ...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의 짐승이 길을 헤매는 것을 보고, 그 짐승을 취해 자기 우리에 넣어 키웠다고 하자(1-5). 남의 소유를 비록 자신이 적극적으로 남의 집에 들어가 훔쳐온 것은 아닐지라도 남의 소유임이 명백한 물건을 취하는 ‘한도‘를 넘어서는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은 이후 자신의 양심과 삶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슷한 일을 행하여 문제가 된 자녀에게 제대로 훈계하지 못할 것이며, 비난 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서도 ‘사람이 다 그렇지 뭐‘ 하며 합당하지 않은 근거로 누군가의 잘못을 상대화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어딘가가 병든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병을 짊어 지고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병이 들게 되고, 결국 죽게 될 것이다. 그와 반대로 마땅히 지켜야 할 한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복을 누리고 장수하게 될 것이다(7).

이러한 한도는 삶의 모든 영역에 놓여 있다. 새끼 새를 품고 있는 어미 새를 만났을 때 새끼 새는 취할 수 있지만 어미 새를 더불어 취해서는 안 된다(6). 새끼 새를 놓아두고 어미 새만 취할 경우 새끼 새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며, 어미 새와 새끼 새를 다 취할 경우 종족 보존의 기회를 빼앗는 한도를 넘는 행동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한도는 마치 지붕 위에 만들어진 난간과 같다(8). 난간이 없을 때 혹 사람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난간이 있다면 사람이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한도는 그와 같이 사람의 생명을 지켜준다.

그러한 한도를 지키는 일은 ‘서로 다른 종류의 재료로 옷을 섞어 짜지 말라‘거나(11), ‘남녀가 서로의 옷을 섞어 입지 말라‘거나(5) 하는 등의 윤리적 코드가 아닌 ‘문화적 코드‘를 통해서도 표현되고 지켜진다. 이를 통해 한도를 지키는 일들이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유지된다. 공자가 말한 예와 (음)악이 살아 있는 사회란 이를 이름이다.

한도를 지키는 일은 물론이지만 문화적 코드로서 뿐 아니라 윤리적 사회적 차원에서도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여인과 동침하고 부당한 이유로 누명을 씌워 내쫓는 일(13-19), 다른 남자의 아내 또는 다른 여자의 남편을 취하여 동침하는 일(22-24),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하는 일 등은(25-29) 엄한 책임이 물어지게 된다(19,21,22,24,25,29).

사람이 자기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일(30), 조상이 정한 지계표를 옮기는 일(19:14), 장자의 순서를 태어난 순서가 아닌 사랑 받는 아내냐 아니냐를 따라 바꾸는 일(21:15-17) 등 한도를 넘어서는 행동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 모두에게 혼란과 고통과 아픔을 낳는다. 그런 사회 속에서 피해를 입는 자들은 강자가 아닌 약자들이고, 의를 따라 살고자 스스로를 지키는 자들이다. 그런 사회에선 누구도 복을 누릴 수 없고, 누구도 참된 의미로 ‘장수‘할 수 없다(cf.7).

가정이고, 사회고, 교회고 지켜져야 할 한도와 질서와 권위가 있다. 니체는 평등이 곧 무차별이 되는 현실을 보고 이를 한탄하였다. 그래서 천민의 도덕이 아닌 귀족의 도덕을 내세웠다. 귀족이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한계가 되어 자신이 한도를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한도는 언어와 같아서 개인이 홀로 정할 수 없다. 한도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이며 역사적이고 무엇보다도 종교적이다.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유월절과 출애굽 경험을 통해 모두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1).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또한 모두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생명의 길로 이끄는 한도는 모두 이 근본 경험에서 나온다. 유월절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걸어가신 길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을 내고 한도를 세운다.

형제의 어려움을 못 본채 말고 반드시 도와야 하고(4),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을 평생 버리지 않고 사랑해야 한다(19,29). 이러한 적극적인 한도가 살아 있을 때 사회는 건강해지고, 교회 또한 생명력을 잃지 않게 된다. 지극히 작은 옷 매무새부터 자연과 타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마땅한 한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약속 - “그리하면 네게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7). 이 복이 나와 우리 가정과 교회와 온 세상 가운데 누려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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