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편

1. 어찌하여 소동하는가, 민족들이,
(어찌하여) 사람들이, 헛된 일들을 계획하는가?
2. 땅의 왕들이 일어서고, 다스리는 자들이 함께 모였다,
               여호와를 대적하고,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야)를 대적하여서!
3. “우리가 찢어버리자, 저들의 결박들을!
   우리가 던져버리자, 우리로부터, 저들의 밧줄들을!”

4. 하늘에 거하시는 자가 웃으실 것이며, 주께서 저들을 비웃으실 것이다.
5. 그 때에 그가 저들에게 진노가운데서 말할 것이며,
그의 분노로 그가 저들을 두렵게 할 것이다.
6. “나, 내가 나의 왕을 세웠다.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7. 내가 여호와의 선언을 전할 것이라!
   그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8.   요구하라! 내게!
     내가 민족들을 너의 소유(상속으로)로 주리라!
                   너의 소유로 (주리라), 땅의 끝들을!
9.   너는 그들을 철막대기로 부술 것이다.
          토기장이의 그릇처럼, 너는 그들을 박살낼 것이다.”

10. 그러니 이제 왕들이여! 깨달으라!
           가르침을 받으라! 땅의 지배자(재판자)들이여!
11. 섬기라! 여호와를, 두려움 속에서!
    즐거워하라! 떨림 속에서!
12. 너희는 입맞추라! 아들에게.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분노할 것이다.
             너희가 길에서 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분노가 지체 없이 타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복되도다!
      그에게서 피난처를 찾는 모든 자들이여!


시편 1편이 “복되도다! 이 사람이여!”로 시작했다면, 시편 2편은 “복되도다! 이 사람이여”로 끝이 난다. “그에게서 피난처를 찾는 모든 자” 즉 “그를 믿고 신뢰하는 모든 자들”은 복이 있다. 이들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

시편 2편은 기름부음을 통해 새롭게 보위에 오른 이스라엘 왕이 민족과 열방 앞에 반포하는 내용으로 여겨진다.

새롭게 보위에 오른 왕은, 기름부음의 의식 가운데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주셨던 한 선포를 전한다.(7-9)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내가 열방을 네 상속물로 줄 것이다. 열방은 질그릇과 같고, 너는 철막대기를 든 자와 같다. 철장으로 질그릇을 부수듯 그렇게 너는 열방을 다스릴 것이다!”

열방에 대한 강력한 주권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한 왕의 선포가 강하게 울려 퍼지지만, 이 시편의 처음은 사실 그와는 다른 분위기로 시작된다. 민족들과 사람들, 왕들과 다스리는 자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기 위해 모의한다. 헛된 일들을 계획한다. 여기서 ‘계획한다’는 말은 시편 1편의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에서의 ‘묵상한다’와 같은 단어이다. 즉 저들은 함께 모여 헛된 일, 즉 여호와를 대적하는 일들을 궁리한다. 모여서 끊임없이 웅얼거리며, 어떻게 하면 여호와의 통치를 끊어버릴까를 묵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일’이다.

여호와의 통치를 끊는 다는 것은 곧 자신들이 스스로를,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통치의 대리자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 또는 실현되어야 할 –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 왕에게, 열방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다. 그의 권세와 열방의 권세는, 철장과 질그릇으로 비교될 만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긴장이 있다. 지금쯤 이스라엘이 온 민족을 다스리고 있어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천하 모든 나라 왕들이 일어나 여호와를 대적한다. 그들은 깨달음을 받고,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여호와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임박한 진노에 멸망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들은 지금 건제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압제하며 압박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 이스라엘 왕이 기름 부음을 받으며, 왕으로 즉위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이스라엘 앞에, 열방 앞에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선포는 이루어질까? 이루어진다면 누구에게서 이루어질까?

이 왕은 누구인가? 우선은 이스라엘의 다윗 계열의 왕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세례 시 하나님은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언하신다. 바로 시편 2편의 인용이다. 아니 인용일 뿐 아니라, 2편 전체의 문맥을 가지고 들어온 선언이다. 하나님은 여호와와 그의 메시야(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자들을 비웃으며 한 왕을 세우신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열방을 철장으로 다스릴 자이다.

저들은 이 왕을 죽이고자 모의했고, 그 모의는 성공한 듯 보였으나, 예수는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되었고, 친히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이제 열방과 모든 사람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입맞춰야 한다. 그에게 절하고, 두려움 가운데 그를 섬기며, 떨림 가운데 그를 기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박한 진노에 망할 것이다. 길을 가는 중에 망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에게서 피난처를 찾는 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될 것이다. 계시록에서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계2:26-27)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예수는 이제 ‘이기는 자’. ‘믿음을 지키는 자’, ‘여호와에게서 피난처를 찾는 자’에게 동일한 권세를 약속한다.

우리는 열방과 더불어 깨달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가지고 주를 ‘섬기며’, ‘떨림’ 속에서 주를 기뻐해야 한다. 비록 열방이 교회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성도를 대적하여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국 여호와의 통치 가운데 있다. 저들이 여호와의 ‘속박’ 또는 ‘결박’으로 이해하는 '여호와의 통치'는 확고하다. 저들은 비록 거기서 벗어나고자 모의하며,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리고자 추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배하고자 욕망하지만, 그리하여 때로 저들의 시도가 이루어지는 듯 보이지만, 그러나 여호와의 통치는 분명히 설 것이며, 그를 거역하는 자들은 임박한 진노에 망할 것이다. 저들은 길에서 망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있다!!!

p.s. 본래 '수요말씀묵상'의 형태로 매주 시편 묵상을 올릴 계획이었는데,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일단 본문을 다시 번역해야 하고, 또 시편이라는 특성상 매 구절 하나 하나가 미묘하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전체적인 묵상을 하기가 쉽지가 않고, 본문 구절해설 같은 형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앞으로 가능하다면(!) 시편을 가지고 수요말씀묵상을 올릴 생각입니다. 아직 일주일에 한번 모여 예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교회와 같은 수요예배는 없어도 수요말씀묵상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수요말씀묵상은 본문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에서 나아가 묵상과 적용까지 이루어질 수 도 있겠지만, 여러분 스스로도 한 주에 시편 한편을 내내 묵상하는 것을 권하며, 그에 대한 기본 재료 정도는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