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장 - 씩씩한 양심 (고후 4:1-18)

 

유명한 K. Stendahl바울은 씩씩한 양심 robust conscience을 가졌다는 말의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이곳 고후 4장이다(2). 바울은 고백록의 어거스틴이나 죄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 루터와 같은 여린 양심이 아닌, 당당하고 확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씩씩한 양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텐달의 진단에 대한 평가와 상관 없이, 이곳 4장에서 만나는 바울은 정말 놀랄 만큼 씩씩하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핍박을 겪고(8,9,17), 거부 당하며(3-4), 내던져진다(9). 주인이 아닌 종과 같고(5) 생명의 누림이 아닌 죽음에 넘겨진다(12). 예기치 못한 당혹스러운 일들을 겪으며(8) 여러 가지 고통에 몸도 상한다(16). 이쯤 되면 누구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할 법하다(cf. 1,8). 이쯤 되면 누구라도 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자기 양심을 뒤적여 볼 법하다(cf.2).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다. 그는 낙심하지 않고(1,16) 절망하지 않는다. 뭉개지지 않는다(8).

 

그의 씩씩함엔 두 가지 근거가 있어 보인다. 1. 그는 자기 자신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를 전하는 자다(5). 생명과 영광과 능력은 그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삶과 몸 가운데 나타내시는 것이다(7). 생명과 능력의 근원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자기가 가진 소유에도 있지 않으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역에도 있지 않다. 그러니 자신의 모습과, 환경과 상황에 의해 그의 마음이 좌우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겪는 고통은 그것을 통해 더욱 큰 영광과 감사를 만들어낼 하나님의 엄청나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17). 바울의 눈은 지금 보이는 환경과 약해지는 자신의 몸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자기 삶 가운데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고 있다(18).

 

2.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공개할 수 있었다. 옷을 입고, 그럴 듯하게 보이고, 영광과 위엄을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2). 그의 자랑은 자신의 강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이었다(12:5,9). 그의 자랑은 연약한 자신을 붙들어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기 때문이다(12:9). 하나님의 자비로 맡겨진 직분이다(1). 남달라서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직분이다. 이 은혜를 아는 자로서 바울은 (A) ‘숨겨야 할 부끄러운 일들거부했고(2), (B) 자신을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 있는 그대로 내어 놓았다. 사람들 앞에 내어 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일들을 갖고 살았다면 아마도 바울은 어느 순간 낙심했거나 또는 자기 영광을 추구했을 것이다. 다른 모든 그의 신학적인 추론과 논리를 따라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숨겨야 할 부끄러운 일들을 거부하며, 오직 진리를 따라서만 살아가는 일은(2)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 질그릇뿐인 나이지만, 그 안엔 보배가 담겼다. 기억하고 그의 얼굴 앞에서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