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1헛그물질 (21:1-25)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4) 잡힌 고기는 없다(4,5). 헛그물질이다. 사실 베드로가 어디 고기를 잡고자 그물을 던졌겠는가?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 “우리도 너와 함께 가겠다.” 깊어가는 밤(3), 한데 모여있던 일곱 제자들은(2) 가슴 속에 수 많은 말들이 파도처럼 일어도, 서로 말이 없다.

 

열흘쯤 전이었을 것이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한 그 밤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던 그 밤

날이 갈수록 또렷해진다. 아마도 수십 번도 더 생각했을 것이다. 대제사장의 집, 그 문 앞에서 만났던 여종, 그녀의 물음과 자기의 대답. 대제사장의 집 뜰, 숯불이 타오르고, 다시 물어지던 물음들과 이어지는 부인들 그리고 닭 울음 소리수십 번도 더 곱씹고 곱씹어 보았을 대화들, 장면들. 자책, 후회, 부끄러움, 분노, 절망

 

그러다 예수의 무덤이 비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자리를 박차고 달려갔었다(20:4). 그 후 두 번 예수를 만났다. 부활하신 그날 밤 예수를 보았다. 기뻤다(20:20). 주께서 이런 저런 말씀들을 하셨다.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8일 후 한 번 더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도마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했지만, 다른 제자들은 말이 없다. 그리고 며칠 후, 갈릴리 디베랴 바다에서 밤새 그물을 던졌다. 바닷가에 서 있는 분이 예수라는 소리에 100m쯤 떨어진 바다에 홀로 뛰어들었다(7).

 

가슴 속에 수 많은 말들이 휘몰아친다. 그러나 그 말들이 나아갈 길이 없다. 밤새 그물을 던진다. 헛그물질이다. 말들이 길을 잃고, 그물이 방향을 잃은 것은 아마도 그의 부인의 말때문이다. 십자가의 예수, 그 절망의 밤은 이제 지나갔다. 스승을 홀로 죽음에 밀어 넣었다는 자책의 밤도 이제 지나갔다. 예수가 부활했다. 하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간 실패도 했고, 바다에 빠지기도 했다. 칭찬도 들었고, 꾸중도 받았다. 하지만 유월절 예비일이 시작되던 그 밤처럼 스스로를 부정했던 적은 없었다 - “너도 이 사람의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지?”(18:17,25)  ? 나는 아니야.” – 자기 부정살기 위해 했을 부인의 말은 곧 자신의 정체와 존재를 지우는 말이었다. ‘나는 그의 제가가 아니야.’ - 자기를 잃은 자의 말은 향할 방향도, 나아갈 길도 없다. 밤새 그물을 던지나 헛그물질이다.

 

예수가 그에게 찾아와, 그날 밤처럼 숯불을 피워놓고(9), 그 밤의 일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기까지, 그를 다시 불러 가야 할 길과 사명을 확인시켜주시기까지(15,16,17,19), 그의 마음은 정처가 없고, 그의 그물도 방향이 없다.

 

때로 헛그물질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무언가 반복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자동적 행위들. 그럴 때 아마도 나는 나는 예수의 제자다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묻지 않아도, 스스로 나는 그의 제자가 아니다라는 자기 부정의 자리에 스스로를 내버려 둘 때, 나의 말들은 길을 잃고, 나의 그물은 방향을 잃는다.

 

그가 와서 내게 묻는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처럼 나도 답한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가 내게 말한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너는 나를 따르라”(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