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지름 (요19:1-16)

2013년 03월 27일 수요일.

분노, 불안, 좌절, 조급, 막막함... 사람으로 소리지르게 하는 마음의 상태들일 것이다. 대제사장들이 소리를 지른다(18:40, 19:6,15).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들이 소리 지르며 죽이려는 예수의 죄목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다'는 것이다(7).

 

누가복음 4장 41절에서는 한 귀신 들린 자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며 소리를 지른다. 귀신 들린 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보고 소리를 지르는데, 대제사장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 한다며 소리를 지른다. 빌라도는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 부르는데(14,15), 유대인들은 가이사 말고는 다른 왕이 없다며 소리를 지른다(15).

 

손에 쥔 것을 놓고 싶지 않을 때, 벅찬 과제가 벽처럼 앞을 가로 막을 때, 막연한 미래가 불안으로 다가올 때, 노력했던 것이 성취되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소리 지름이 모두 누군가를 향한 분노의 외침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가나안 여자는 절망적인 고통의 상황 속에서 예수께 나아와 소리 지른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15:22).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도, 마음이 갈라진 자도 소리 지른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 34:6)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우리에게 다른 왕은 없다."는 소리지름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소리지름...  

그러나 그 모든 소리를 압도 하는 하나의 소리지름을 나는 요한 복음에에 한번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소리를 지르시( 11:43). 무덤 저편에서 들려 오던 그분의 소리지름이 죽은 나사로를 불러 깨웠듯,  십자가 저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그분의 소리지름이 내 온 몸과 혼과 영을 울려 깨우시기를.... 내 심령이 그를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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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말 (요19:17-27)

2013년 3월 28일 목요일

"예수, 나사렛 사람, 유대인의 왕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19). 유대인에 의해 로마 권력에 넘겨져 십자가에 죽임 당한 '유대인의 왕' 예수. 헤롯 대왕 사후 아그립바 1세에 이르기까지 40여년 간 유대 땅에는 '왕'이 없었다. 헤롯의 아들 아켈라우스나 빌립 그리고 안티파스는 모두 분봉왕이지 왕이 아니었다. 그런데 28년 경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사람이 '유대인의 왕'이란 타이틀을 지닌 채,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유대인의 왕'에 대한 성경의 처음이자 마지막 요구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신 17:19)'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이 예수의 겉옷을 나눠갖고, 그의 속옷을 제비 뽑는다(23). 다른 복음서와 달리 요한은 이것이 시편 22편 18절의 성취라 기록한다(24). '유대인의 왕'은 말씀을 이루는 자로서 '유대인의 왕'이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26), '보라, 네 어머니라'(27) - 요한복음에 나타난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의 네 마디 말 중 두 마디 말은, 사도 요한에게 자기의 어머니를 모시라는 말이었다. 마리아에겐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야고보'와 '유다서'의 저자 '유다' 등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순간,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자기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는 말씀을 두 번이나 하신다(26,27). 사실 이해하기 힘든 분부이다. 그런데 요한은 "그 때부터 자기 집에" 마리아를 모신다(27). 초대교회 전승에 따르면 요한이 에베소에 있을 때 마리아 또한 그곳에 있었고, 요한은 마지막 순간까지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처럼 모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지키는 자로서 '유대인의 왕', 그 왕의 십자가 상의 마지막 말,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그 말을, 사도 요한은 왕의 말로 알아 듣고 "그 때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순종한다. 예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자로서 사셨듯, 그의 제자 또한 왕이신 예수의 말씀을 마지막까지 이루는 자로 살아간다. "당신은 나의 주님이요, 나의 하나님입니다"(20:28) 뒤늦은 도마의 고백처럼, 나 또한 고백한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시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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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요 19:28-37)

2013년 3월 29일 금요일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28) - 응하게 한다는 말은 이룬다, 성취한다, 완성한다는 말이다. 요한은 19장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하여 4번이나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다(24,28,36,37). 이 모두가 십자가 상의 예수에게서 이루어진다. 요한은 십자가의 예수를 인간의 비열함과 잔인함에 희생당하신 분으로 묘사하는데 관심이 없다. 요한에게서 만나는 십자가의 예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살았던 말씀의 수종자다(28,30).

 

"다 이루었다"(30)는 예수의 마지막 말 바로 직전의 "내가 목마르다"(28)는 탄식조차 예수는 성경을 이루기 위해 입을 연다.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전, 예수는 '내가 목마를 때에 그들이 초를 주어 마시게 하였습니다'라는 시편 69편 21절을 이루기 위해 "내가 목마르다"(시69:3)고 말을 한다. 십자가가 시편 69편을 통해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 예수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말'을 한다.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던 병사들의 행위를 통해(24)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시편 22편의 빛에서 이해되게 된다. 

 

많이  맞아 녹초가 된 몸으로 인해 예수는 십자가에서 일찍 죽게 된다. 십자가에서 사람이 죽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질식이다. 위 아래로 오르내리던 몸이 더 이상 아픔을 피할 여력이 없어서 몸을 늘어뜨리게 되면 흉부가 압박되어 질식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다. 뼈를 꺾는 것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하여 그 과정을 빨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밤새 이어진 재판과 채찍질로 인해 이미 자기 십자가를 질 힘조차 남지 않을 만큼 몸이 상했고, 그로 인해 뼈를 꺾을 일도 없이 십자가에서 죽게 된다. 너무 이른 죽음에 병사도 빌라도도 놀라지만(cf.막15:44) 이로 인해 유월절 양 잡는 날 죽임을 당하신 예수는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죽으신다(36, 출12:46). 

 

예수의 이른 죽음을 확인하고자 병사들이 예수를 창으로 찌르다. 물과 피가 나온다(34).  요한은 이 사건 속에서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는 스가랴 12장 10절의 말씀을 떠올린다(37). 슥12:10을 새번역은 이렇게 옮기고 있다.『그러나 내가,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구하는 영'과 '용서를 비는 영'을 부어 주겠다. 그러면 그들은, 나 곧 그들이 찔러 죽인 그를 바라보고서, 외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슬피 울며, 맏아들을 잃고 슬퍼하듯이 슬퍼할 것이다.』(슥 12:10). 여기서 창에 찔린 분은 '하나님' 자신이고, 그로 인해 우는 자들은 '용서'를 구하며 은혜를 구하며 울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예루살렘 주민을 위해 열리게' 된다(슥13:1). 때문에 '그를 찌른 자'조차 예수의 다시 오시는 날을 볼 수 있게 된다(계1:7).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예수는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까지 말씀을 이루기 위해 '말'을 하고 '행동'을 하신다. 그로인해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그를 찌른 자'에게조차 열리게 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그의 은혜로 주어진 삶임을 뼈속에 새기고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