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그리고 만남의 방식 (요4:1-26)

 

여섯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여자(18),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 낮에 물을 뜨러 오는 여자(6-7). 그녀에게도 아버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녀 인생의 첫번째 남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그녀의 아버지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토록 아버지를 싫어하며 자랐던 딸이 맞아들이는 남편은 이상하게도 아버지를 닮아있다. 그녀의 아버지 또한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을까? 한 여인에게 충실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사람을 바꿔가며 살았을까? 남자에게는 문제되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여자에게는 부끄러움과 고통이다.

 

그녀가 오늘 우물 가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6). 자기를 찾아오신 아버지를 만난다(23). 수단과 도구로 사용되다 버려지던 그녀에게 '예배'라는 낯선 만남의 방식으로 찾아오신 아버지를 만난다. 욕망의 성취를 위한 수단과 도구가 아니라 상대방을 섬기며 경배하는 예배라는 만남의 방식이 있음을 보고 또 듣는다. 일을 시키고 부려먹는 자의 명령이 아니라,  무언가를 '자신'에게 '원하고 있는' 자의 부탁의 소리를 듣는다("내게 물을 좀 주십시오"(7)). 다른 만남의 방식이 있다. 아니 참된 만남이 방식이 있다. 예배고 경배다. 예배하는 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자 - 그에게서 생수가 솟아난다. 만날수록  목말라지는 만남이 아니라, 만날수록 생수(살아 있는 물)가 흘러나는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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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받은 삯 (요 4:27-42)

 

사마리아의 수가성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그가 세상의 구주인줄 알고 믿는다(42). 그가 나고 자란 고향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지 않고(44), 유대의 지도자들 또한 그를 믿지 않았지만(7:48), 구원의 때는 무르익어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35). 추수꾼이 필요한 이 때, 예수는 추수꾼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묘사를 한다. 하나는 추수꾼이 이미 삯을 받고 일한다는 것이고(36), 다른 하나는 자신이 심지도 않고, 수고하지도 않았던 것을 추수꾼이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38). 

 

누군가는 심고, 누군가는 물을 주고, 누군가는 거둔다(cf. 고전3:6). 각자 주어진 역할과 몫이 있다. 그러니 낙심할 일도, 자랑할 일도 없다. 다만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할 뿐이다. 충성이 맞다. 왜냐하면 일꾼들에겐 이미 넉넉한 삯이 주어졌기 때문이다(36a). 삯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삯과 더불어 기쁨으로 일한다(36b). 풍년이다(35). 나 또한 일꾼으로 부름 받았으니, 내게도 이미 삯이 주어졌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자, 기쁨으로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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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믿고, 예수를 믿다 (요 4:43-54)

 

첫 번째 표적의 장소였던 갈릴리 가나에서(46) 두 번째 표적이 행해진다(54).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 예수께서 갈릴리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예수께 나와 내려와 자기 아들을 고쳐주길 청한다. 그와 함께 내려가는 대신 예수는 '네 아들이 나았다'고 말씀하신다. 왕의 신하가 '그 말씀'을 믿고 돌아간다(50). 하룻길을 가다 자기 집 하인을 만난다. 어제 7시, 열이 떨어지고 아들이 나았다는 말을 듣는다. '아, 예수가 말씀하셨던 그 시각이다'. 그와 아들과 온 집이 예수를 믿는다(53).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돌아가던 하룻 길...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 한 마디, 그 말을 믿고 돌아가던 길...  그 밤, 새벽, 그리고 아침... 집 하인들을 만나고, 자기 아들이 열이 떨어지고 살아 있다는 말을 듣는다. 예수가 믿어진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 하룻길을 간다. 매일 아침, 성경을 펴면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믿고, 하루를 산다. 하룻 길을 간다. 그 길을 가다보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 표적을 본다.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을 믿고 하룻길을 가다보면, 예수를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