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역사 (신1:1-18)

2012-11-01 목요일

열 하루면 갈 수 있는 길을 돌고 돌아(2), 40년 11개월만에(3),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약속의 땅 앞에 선다(5). 그곳,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모세가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한다(5). 율법은 일차적으로 백성들 사이의 다툼과 갈등을 풀어내는 판결의 기준이다(cf.12). 따라서 율법을 설명한다는 것은 율법의 규정과 규례를 설명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신명기는 모세가 재판관들과 수령들을 세우게 된 사정으로부터(9-13) 율법에 대한 설명을 풀어간다(9-18; cf출18장). 그리고 이야기를 가나안 정탐(19-33)과 가데스바네아에서의 실패(27,34-46), 광야에서의 40년(2:1ff), 주변 지역에 살던 민족과 나라들로 인한 어려움(2:1-25), 요단 동편 가나안 족속에 대한 정벌(2:26-3:11), 요단 동쪽에서 기업을 얻는 두지파(3:12-22), 모세의 마지막과 차기 지도자로 세워지는 여호수아(3:23-29)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로 이끌어간다.

율법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율법이 수여 될 때, 호렙산에 이른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한 자들로 거기에 섰다.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타는 불꽃 가운데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거기에 섰다. 율법의 말씀을 받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은 황금 송아지를 섬겼고, 돌판은 깨어졌다. 재판과 판결을 위해 수령과 지도자들이 세워졌다. 세워진 70명의 지도자 중 둘은 회막 문으로 나오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받았다. 40년... 무수한 이야기가 율법을 중심으로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고 엮여졌다. 지난 40년 간의 이야기.... 열 하룻길을 40년을 걸어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은 그들의 삶과 역사와 뗄 수 없는 '삶의 길'(토라)이었다.

율법 안엔 지난 40년 간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17)라는 모세의 말은 그러니 삶을 통해 우러나오는 백성들의 고백이다. 열 하룻길을 40년 동안이나 돌아왔지만, 그 돌아온 인생 가운데 율법이 살아 숨쉬고 있다면, 하나님만이 참된 재판관입니다('다니엘')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다면, 그렇게 신명기의 고백들이 울려나올 수 있다면, 돌아온 길만은 아닐 것이다. 무서운 것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 없이 살아가는 열 하루이고, 하나님과 만난 이야기가 없는 열 하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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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신1:19-33)

2012-11-02 금요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에 두고, 율법을 설명하겠다는(5) 모세의 이야기는, 40년 전쯤 부모 세대들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안아(31) 가데스 바네아, 약속의 땅의 관문에까지 이르게 하셨다(19). 그들 보다 먼저 길을 가셔서,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갈 곳을 인도하셨다(33).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리석은 자녀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32). 그의 능력도, 그의 의도도, 그의 진심도 믿지 않고, 오히려 낙심하여(28) 원망하며(27) 주저 앉았다. 나아갈 곳을 잃은 자들의 40년은 40일 같이 지나갔다. 불신! 다른 것은 믿지 못할 수 있다. 사람 마음은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느 때나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아버지'다. 돌아보면 나를 안으신 그의 손이 보이고, 나를 품으신 그의 넓은 가슴이 느껴진다. 돌아보면 항상 앞서 가셔서 내 갈길을 준비하시고 인도하시던 그의 등과 발이 보인다. 주저 앉아 있지 말고, 앞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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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걸음과 방황 (1:34-46)

2012-11-03 토요일

오직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 자손에게 주리라.“(36)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던 갈렙의 마음은 갈라짐이 없었다. 그는 마음의 갈라짐 없이(=온전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코자 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 열 두 명 모두,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실 땅에 대한 기대 가운데 그 땅을 탐지했을 것이다. 그 땅과 땅의 열매를 보았을 때(25) 그들은 땅의 아름다움에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열명의 마음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강함으로 인해 흔들리고 나뉘어지기 시작했다. “저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마음이 갈라지기 시작하면 순종은 멀어지기 시작한다. 강대한 적들로 인해 마음이 갈라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강대하심에 대한 확신이 엷어졌기 때문이다. 그 연약해진 공간을 뚫고 현실의 어려움이 성벽처럼 쌓여지면 마음은 갈라지고 갈라진 마음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잃는다. 나아갈 방향을 잃은 발걸음은 방황이 되고, 방랑이 된다. 40, 아니 400년을 살아도 제자리일 뿐.

 

순종은,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마음의 갈라짐 없이 그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다. 강대한 적을 앞에 두고도 말씀을 따라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순종이고, 싸우지 말고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라 할 때, 앞이 보이지 않는 광야 길을 걷는 것이 순종이다(cf.43). 순종에 실패하면 방황과 방랑이 시작된다(40). 순종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온전하기를, 갈등에 밀리지 않기를, 그가 내게 원하시는 일에 순종의 발걸음을 내 딛기를 기도한다. 그렇지 않다면 평생을 살아도 방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