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5) – 사랑의 시작(요일 4 7-11, 19)

 

7)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있는 모든 자는 하나님에게서 낳아졌으며,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8)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나타내졌습니다. 그를 통하여 우리가 살도록 그의 독생자를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10) 속에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 자신이 우리를 사랑했고, 그리하여 그가 자기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제물로 보냈습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이여! 하나님이 이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우리 또한 서로를 사랑할 이유() 있습니다… 19) 우리는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요일 4:7-11,19; 사역)

 

1.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관계 맺음 없이도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래의 성경을 읽고 스스로를 우리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지, 그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은 왜 홀로 살 수 없는지 이야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 1:26-27)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가장 하나님 다운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지어졌으되, 하나님의 가장 하나님 다운 모습을 따라 지어졌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가장 하나님다운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지으시되, 서로를 우리라 부를 수 있는 한 몸인,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또한 처음부터 우리로 계시면서 서로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식의 개인주의는 그러니 성경과 얼마나 다릅니까? 성경을 따라 말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 속하여 살고 있지 않은, 독립적인 개인으로서의 나란 세상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한 몸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우리이며, 한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우리이되, 서로 사랑하면서 만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2.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지어졌다는 것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2:18)는 말씀에서도 확인됩니다. 사람이 홀로 사는 좋지 못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여자를 하나님은 굳이 돕는 배필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돕는 배필이란 남자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짝정도를 뜻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면 사람이 홀로 있는 좋지 않은 상태를 해결하는 돕는 배필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을 좋지 못하다 하시며, 그 상태를 온전케 하기 위해 돕는 배필을 지어주십니다. ‘돕는 배필이란 문자적으로 그 앞에 서 있는 도움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도움이란 큰 일을 하는 남자를 옆에서 거들어 도와주는 여자와 같이 보조적인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같은 능력 있는 어떤 존재가, 홀로 있는 누군가의 편에 서서, 그를 편들어 도와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돕는 것 같은 도움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돕는 것 같은 도움을 주는 자가 돕는 배필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돕는 배필로 있어 주는 것입니다. ‘그 앞에 항상 도움으로 서 있는 것이 사랑이며, 사람은 이렇게 자기를 편들어주고 사랑해주는 돕는 배필 없이는 결코 좋지 않습니다. 사람은 잘 났던 못 났던 홀로 충족되지 않으며, 자기를 편들어주고 인정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세워지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겐 돕는 배필이 필요하며, 사랑과 인정이 필요하지, 홀로 만족하며 홀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3.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래가 춤을 잘 추어서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칭찬을 받았기에 고래가 춤을 추게 됩니다. 사람들은 왜 자기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는가 원망하며, 사랑과 인정을 얻기 위해 춤을 추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외모를 가꿉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충분히 다른 사람들을 대접하고 인정하고 사랑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왜 나만 바보 같이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합니다. 이 불평과 한탄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무엇이 채워지지 않아서 일까요? 그리고 이 하소연의 고리는 어떻게 끊어질 수 있을까요?

 

4. 우리는 자주 내가 준 사랑에 비해, 충분히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명령 앞에, 다시 한번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마음을 추스르곤 합니다. 그러면서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인 우리는 외부에서 공급되는 사랑 없이도 스스로 발전시키는 사랑으로만 사랑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래 성경을 읽고, 나만 늘 손해 보며 산다고 느끼며 사랑의 계명을 지키기에 곤고한 우리가 잊고 있는, 참으로 중요한 사실을 찾아 말씀해보시기 바랍니다.

 

  10) 이 속에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 자신이 우리를 사랑했고, 그리하여 그가 자기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제물로 보냈습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이여! 하나님이 이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우리 또한 서로를 사랑할 이유가(/빚이) 있습니다… 19) 우리는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요일 4:10-11,19)

 

->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우리가 하는 모든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사랑 받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에서 우리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서 있는 도움이며, 우리를 이 모습으로 지으시고 그런 우리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깊고 크고 무한하신 사랑을 잊고, 내가 충분히 사랑 받고 있지 못하다고 불평하고, 내가 준 것에 비해 돌아오는 것이 너무 적다고 불평합니다. 때로는 내가 사랑 받을 만한 존재가 되고, 멋진 춤을 추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줄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증명하거나, 내가 지금껏 베푼 사랑을 들먹이며 다른 사람의 사랑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내가 사랑 받을 만한 존재가 되어야 비로서 얻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도대체 그렇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오직 내가 이미 사랑 받고 있는 자라는 확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춤을 추어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칭찬 받음으로 춤을 추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 받을 만하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귀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에게서도 이 사랑이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