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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 – 인생 최고의 목표
1. 여러분들은 어떤 것들을 목표로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더 좋은 집, 더 좋은 직장, 자녀의 성숙과 행복….우리 삶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로워지는 것, 가족들의 평안…. 이런 것들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전부일까요? 혹시 여러분들은 이 모든 것들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구하는 목표가 있습니까?
2.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 삶이 이 땅에서의 삶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치 나그네와 행인같이 이 땅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세상에서의 삶을 통과하고 나서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참된 집, 영원한 삶의 터전에 이를 것입니다. 그 곳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도대체 어떤 기준과 잣대로 우리의 삶을 평가 받게 될까요? 이 땅에서 우리가 목표 삼아 이루어낸 모든 것들은 그 곳에서 어떤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까요? 하나님의 평가는 이 세상 사람들의 업적이나 성취에 대한 평가와 같을까요? 아래 성경말씀을 참조하여 이야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로마서 2장 6~11절)
=> 하나님은 그가 ‘선을 행하는 사람인가/악을 행하는 사람인가‚를 따라 판단한다고 합니다.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런 사람인가>가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이때 <선을 행하는 자>란 무엇보다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영광을 구치 않는 자> 곧 <사랑의 사람>을 뜻하는데, 왜냐하면 선을 행하는 자에 반대되는 <악을 행하는 자>란 본문에서 <당을 지어 불의를 좇는 자> 곧 <자기를 위하여 파당을 만드는 자>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파당을 만든다는 것은 타인을 위하여 참고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닌, 자기를 위하여 타인을 배제하는 행위로서,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고린도 교회는 은사와 능력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교회였습니다. 베드로, 아볼로, 바울 등 많은 사도들이 이곳을 다녀갔고, 그들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지명도에 있어서나 교회의 규모에 있어서나 행하는 일들에 있어서나 어느 모로 보나 당대에 유명한 교회로 알려질 만한 ‚유명 대형교회‘가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육신에 속한 자로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며(고전3:1-3), 성도된 자들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로서 은사나 능력이나 명성이나 인맥이나 구제가 아닌, 사랑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바울은 사랑을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 유일한 목표로 제시하고 있을까요? 다음의 두 성경말씀을 읽어 보시고, 바울은 사랑을 어떤 것들과 비교하고 있는지, 그것들은 어떤 면에서 사랑과 다른 것인지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전 12:4-11)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 13: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고전 12장은 은사들의 목록을 보여주며, 고전 13장은 바로 그 은사들을 사랑과 비교하면서, 사랑을 그것들과는 다른 것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은사란 <노력하고 힘써서 내 소유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재능이나 선천적 자질이 그러하듯, 내가 훌륭하여 내게 있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서 내가 그 자질과 능력을 누리게 된 것이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은사에 있어 각각 차이를 갖게 됩니다. 사랑은 그와 달리 <내가 노력하고 힘써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재능이나 은사의 유/무, 과/소와 상관 없이 누구나, 허락된 삶의 자리에서 힘써 도달할 수 있고, 도달 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4. 다음의 성경말씀을 읽어보시고, 바울은 무엇을 어린아이의 것, 부분적인 것, 없어질 것으로 이야기하고, 무엇을 장성한 사람의 것, 온전한 것,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이야기하는지 찾아 보십시오.
(고전 13:8-11) 『[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예언, 방언, 지식 등의 은사들은 없어질 것, 부분적인 것, 어린아이의 것이며, 사랑은 없어지지 않을 것, 온전한 것, 장성한 어른의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재능과 은사, 선물로 주신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내가 주어진 모든 은사들을 가지고 ‚넌 무슨 선물 받았어?, 넌 겨우 그것 밖에 없어? 내 것을 봐?‘하면서 은사 자체만을 비교하고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린아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자‘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통하여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사랑의 사람, 장성한 자, 어른, 온전한 자로 자라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목표하시는 ‚사랑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다음 성구를 읽어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어디까지 와 계십니까? 아직 잘 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두 번의 성취가 아니라 매일,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직 사랑이 나가는 자가 되어 있습니까?
(고전 13:4-7)[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