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이 가도 (20:1-15)

2012 12 31() 송구영신 예배 설교

 

가장 확실하면서도, 가장 실감이 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내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오늘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그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오늘 주어진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놓치고 산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제 한국의 제 CCC후배가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을 읽고는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그 친구가 새벽에 경찰에게 전화를 받았답니다. 혹시 00‘라는 사람을 아냐고자기 친척 동생이라 했더니, 그 친척 동생이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얼마 전 그 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새 신발들이 들어왔으니, 아이들과 함께 와서 신발 좀 보고 가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한 번 들리라고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동생의 마지막 통화 기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경찰이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글을 읽고, 그런 소식을 듣게 되면,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은 오직 한 번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사람은 오직 단 한번 인생을 삽니다. 두 번, 세 번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렇게 한 번 산 인생을 기준으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20:18>

 

어떻게 보면 이것은 너무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직 단 한번 뿐인 인생을 사는데, 그 한번의 인생으로 영원이 결정된다니…. 그건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과연 똑 같은 인생을 10번을 살 수 있다면, 그래서 정말 10번의 인생을 더 살 수 있게 된다면, 10번째 인생은 우리가 지금 사는 처음 인생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될까요?

 

처음 아홉 번은 나머지 한 번이 남았으니 대충 막 살고, 그리고 마지막 10번 째 인생은 그렇게 9번씩 살아온 삶의 관성을 따라 똑같이 살게 되지 않을까요? 처음 서 너 번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겠다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하고 싶은 것이란 많은 노력 끝에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행하게 되는 가치 없는 행동들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아홉 번째 인생까지 그냥 보내게 될 것이고, 결국 마지막 열 번째 인생을 맞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맞게 된 열 번째 인생은 이전과는 다르게 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100년이 아니라, 천 년을 산다면, 사람은 100년을 살 때 보다 훨씬 더 훌륭해질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 주어진 백 년의 인생을 가치 있게 살지 못하는 자는 천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 2-3절을 봅시다.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20:2-3)

 

그렇게 사탄이 천년 동안 갇혀 있다가 잠깐 놓여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과연 사탄은 변했을까? 천 년을 무저갱에서 지내면서 그는 후회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달라졌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20:7-8)

 

천 년이 지나도 사탄은 변하지 않고, 사탄에게 미혹되었던 사람 또한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계시록 20 4절에 보시면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합니다.

 

한번 짐승에게 절한 자는 다시 그에게 절할 것이고, 한번 짐승에게 절하지 않았던 자는 천년 동안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한 번 어리석은 자의 길을 간 자는 천 년이 지나도 다시 그 길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한 번 의의 길을 간 자는 천년 동안 의의 길을 선택하여 끝까지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오직 단 한 번 뿐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한번은 곧 바로 영원이 됩니다. 오늘 2012 12 31 10 40이 시간은 다시 오직 않습니다. 그 시간이 인생에서 오직 한 번 뿐이기 때문에, 내가 살았던 그 삶의 시간은 그대로 영원이 됩니다. 그 시절은 다시 돌아 오지 않고, 반복되지 않습니다. 오늘의 지금 이 시간은 그대로 영원이 됩니다.

 

계시록 20 12절에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20:12)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나의 삶은 그대로 기록됩니다. 그 기록은 바뀌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따라 나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기억하지 않고 잊으신다고 하십니다.  

(103:12)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 기록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들의 삶을 통해 빚어낸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이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6.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1:24,16) 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단 한 번의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들어갈 것입니까?

 

제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우리 교회 성가대 테너 중에서는 역시 윤기형제가 가장 노래를 잘하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 성가대 테너 가운데 독보적인 목소리와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목소리와 테크닉을 하늘의 천군 천사에 비할 수 있을까요? 보통 아름다운 목소리를 천상의 목소리라 합니다. 바로 그 천상의 목소리 자체와 비교할 때 더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윤기 형제의 노래가 천군 천사의 노래보다 더 아름답고 더 감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그 노래에 자기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그 노래는 세상 어떤 노래보다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실패할 수도 있고, 좌절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방탕할 수는 없습니다. 소위 성공신화의 삶을 살아야 그 인생의 노래가 아름다운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아버지는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그야말로 이름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곁에서 보고 들은 아버지의 삶의 노래는 세상 어떤 사람의 노래보다 아름답고 존귀했습니다. 제 아버지가 단 한번의 인생, 그렇기에 그대로 영원이 되는 그 인생을 통해 부른 노래는 영광스럽고 존귀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내일, 그리고 또 한 해, 그것은 그대로 영원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삶의 그 무거움을 헤아리고, 하루하루 최고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는 2013년 여러분과 저의 인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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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구영신 예배 설교 녹음이 이루어지지 않아 원고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