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유아 세례 및 입교 예배 설교 - 우리가 함께 서 있는 은혜의 자리

 

(롬 5:1-6)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거리낌이나 적대감이 아닌 신뢰와 사랑으로 하나님과 관계할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자는 하나님과 평화를 가지고 있습니다(5:1).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이 있을 수 없지만,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께는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고, 그에게 나아가면 그는 항상 우리를 사랑으로 맞고 대하십니다. 이것은 얼마나 엄청난 특권인지 모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은 다만 내가 아닌 우리라는 사실입니다. 짧은 본문에 개역 성경은 8번 우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원문엔 11번 정도 쓰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말할 때 성경은 다만 신자 개인이 아닌 성도의 공동체를 뜻하는 우리로서 구원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내가 은혜의 출입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것입니다(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사람 또한 나 개인이 아니라 우리입니다(2).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고 자랑하는 사람 또한 나 개인이 아닌 우리입니다(3). 환난이 인내를 만들고, 인내가 연단을 만들고,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줄 알고 있는 자도, 다만 나 개인이 아니라 우리입니다(3,4).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내 곁에, 같은 환란 속에서도 주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환난이 인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내가 특별히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곁에 같이 환난에 동참하고 있는 우리 형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내가 무수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연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또한 우리가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 4:10-12)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로 부르셨고, ‘우리‘로 빚어가시며, ‘우리‘로 세워 가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 자신이 삼위 일체 곧 ‘우리‘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목표와 방향은 다만 개인의 성취나 완성이 아니라, 우리의 온전함입니다. 그것이 부름의 방향이며, 또한 그 부름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곳도 다만 나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자리는, 다만 나 개인의 삶의 자리가 아닌, ‘우리‘의 삶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라는 부름 아래 함께 엮어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자주 강조해서 말씀 드렸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의식‘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배 가운데 유아 세례와 입교 예식을 거행하려고 합니다. 이 두 의식은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삶에 있어 교회 공동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아 세례와 입교는 사실 신앙 고백과 교회 공동체에 속함이라고 하는 하나의 사건을 구분하여 시간의 차이를 두고 행하게 되는 의식입니다. 나이가 들어 예수를 믿게 되는 경우 신앙 고백을 할 때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 받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일과 자기의 의지로 신앙을 고백하는 일 사이에 간격이 있게 됩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합니다. 성경은 능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는데 그럼 언제부터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된 것입니까? 만 14세가 되어서요? 그렇게 얘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구원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유아 세례와 입교라는 두 개의 의식을 통해 시간의 차이를 두고 행하게 되는데, 그 사이를 채우고 메우고 있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세례란 믿음으로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데, 그렇게 연합된 예수는 어디 천상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형제 자매들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러니 예수와 연합되는 세례란 사실상 교회 공동체 안에 예수로 말미암아 서로 함께 묶이는 것입니다.

 

오늘 입교하는 세 사람은 어려서 부모님의 신앙 고백을 따라 유아 세례를 받았고, 이제 만 14세가 넘어서 스스로의 신앙의 고백을 따라 입교 예식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아 세례에서 입교에 이르기까지, 입교 대상자들이 신앙 안에서 자라나,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게 되기까지는, 다만 본인이나 부모님의 의지만이 작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개인이나 개인이 속한 가정 만이 아닌, 보다 큰 믿음의 가정인 교회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껏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신앙의 도리를 배울 수 있었으며, 믿음으로 사는 삶을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입교를 통해 킬 한인선교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김다니엘, 김한나, 석샤론은 다른 어느 곳이 아닌 킬 한인선교교회를 통하여 유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서 양육되었고, 우리 안에서 믿음을 듣고 배웠으며,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사실이 참으로 감격스럽고 감사합니다.

 

지난 14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통해 당신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나타내신 증거가 바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은 모습도 많이 보여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붙잡고 세워, 당신의 사랑을 전달하고, 보여주는 공동체로 빚어 오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아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12:32)

 

또한 오늘 우리 교회에선 네 가정이 유아 세례를 받게 됩니다. 평생에 단 한번 주어지는 이 세례는 그러나 다만 그 가정의 일만이 아니며, 그 부모와 개인의 사건만이 아닙니다.

 

교회는 부모의 신앙 고백을 따라 유아 세례를 베푼 아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양육하고 자라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유아 세례를 통해 이 아이는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다만 누구 누구 가정의 아이 만이 아닌,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 우리가 사랑으로 자라게 하고 양육해야 할 우리의 아이들인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 만 14세가 되어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까지,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들려주고, 그 사랑을 보게 하며, 알게 해 줄 책임이 우리 교회 공동체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 서로 사랑하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르쳐지고, 들려질 뿐 아니라, 보여지고, 체험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디 하늘에 써있거나, 성경에만 써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매일 같이 마주치고 보여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자신과 연합된 우리를 붙잡고, 그의 사랑을 공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사랑을 증거하고 보여주고 나타낼 책임과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입니다.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사랑 받음이 사랑을 알게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 구성원의 사랑을 통해서 입니다.

 

오늘 유아 세례를 받는 아이들이 오늘 입교하는 아이들과 같이 그들이 속한 킬 한인선교교회 공동체인 여러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코이노니아)를 들을 뿐 아니라 직접 보고 체험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