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9 - 넉넉함 Vs  인색함 (고후 9:1-15)

 

누군가의 선물을 받고 오히려 기분이 나빴던 경험이 있었다. 선물을 받고도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은 받는 쪽에서의 바른 마음이 아니라 여겨지기도 하고, 아직 누군가의 선물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연스럽게 나빠지는 기분 자체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선물은 절대 인색하게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인색이란 선물의 비싸고 싼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과 인색함을 이름이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한다(7). 여기서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즐겨내는 자란, 많이 내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내되 마음을 다하여 기쁨으로 내는 자, 내는 것이 즐거운 자를 말한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주는 선물이 받는 사람의 마음을 오히려 불쾌하게 한다면 인색함이나 억지로 내는 헌금이나 연보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불쾌하게 할 것이다(7).

 

이는 하나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도록 주셨다(8). 그는 우리에게 인색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항상‘ ‘모든 일모든 것에 넉넉함을 허락해 주셨다(8,11). 심는 자에게 먹을 양식 뿐 아니라 뿌릴 씨 또한 넉넉히 주셨다. 그는 우리에게 인색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셨다(cf. 7). 그 덕분에 우리 또한 인색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8,11,15).

 

바울은 이제 거액의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다(8:20). 이 연보는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그들에게 제시한 방법을 따라 고린도 교회에서도 행해져야 했다(고전 16:1).

매 주일의 첫날, 예배를 위해 모일 때, 각 사람이 자기의 수입에 따라 조금씩 모았다가 때가 되면 그것을 모아서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갈 것이다(고전 16:2). 이렇게 미리 미리 조금씩 마음을 담아 준비해야 그것이 연보(=)‘가 되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인색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고(5), 그 경우 이 연보는 기쁨이나 감사가 아닌 불쾌함만을 낳을 것이다.

 

사람에게든 하나님에게든 인색하지 말자, 아니 인색할 수 없다. 매주 조금씩 모아두는 것이어도 좋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진정한 (=연보)‘에 참여하는 것이다. 스스로 넉넉하다 느끼지 못한다면 연보에 참여할 수 없다. 아니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해 스스로 넉넉하다 느낀다면 그것이 많든 적든 연보에 참여할 수 있다.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인색하게 산다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넉넉하게 산다면 그 또한 한도 끝도 없다. 이 자리를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