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다니엘 4장 – 인과론의 함정 (단 4:1-37)
“이렇게 큰 나라와 도성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권세를 잡을 만한 위엄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30) –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는 일은 어디서나 행해지나, 대개의 경우 잘못된 추론이기 십상이다. 어떤 이가 성공하면 사람들은 그의 성공의 원인을 그에게서 찾는다. ‘창조적이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생각이 있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눈 앞의 이익보다 사람을 중히 여겼다‘ 하는 식이다. 하지만 빠른 경주자라고 먼저 도착하는 것 아니며, 용사라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 아니고,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전9:11).
큰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지위와 권력과 성공의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34ff.).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크고 놀랍고 능하신 통치로 땅의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고 있음을(1-3,35), 자신의 권세는 그에 의해 잠시 맡겨진 것임을 깨닫는다(35). 그 깨달음이 비로소 그를 사람답게 한다(33,36).
역사는, 한 두 가지 원인으로 모든 결과를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매번 보여준다. ‘성공‘한 이들은 정작 자신들의 성공의 이유를 대지 못한다. 어찌하여 자신들에게 이런 성공이 주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 인식이, 자신보다 큰 지혜와 능력의 손길이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으로 이끌 수도 있고, 이 모든 일의 이유가 자기에게 있다는 착각과 착각에 근거한 교만으로 이끌 수도 있다(37). 겸손은 그를 사람 되게 하고(36), 교만은 그를 지각 없는 짐승처럼 살게 한다(32).
교만은 성공 아닌 것을 '성공'이라 하고, 그 '성공'의 이유가 '이것 저것'이라 한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는 것에서 '자신의 성공'을 찾고, 그 '성공'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평화를 일구는 일‘ - 그것이 지금 자신의 권세에 스스로 감탄하고 있는 느부갓네살에게 요구되는 그의 몫의 삶이며, 그 몫을 살아내는 것이 그의 성공이라고 다니엘은 말한다(27).
실패와 좌절의 7년을 보내고(32 LXX) 지혜를 얻고 총명을 되찾은 자가 고백한다 “이제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드리며 존경한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모두 진실하고 그분이 행하시는 길은 의롭다. 그분은 언제든지 자기를 스스로 높여서 행하는 사람들을 낮추실 것이다.“(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