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장 –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이름 (출3:1-22)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릴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물음에(13)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고 답하며(14), '스스로 있는 자(에흐예)가 나를 보냈다'고 말하라 하신다(14). 이 문구에 대한 해석은 칠십인 역에서부터('나는 존재하는 자다') 다양하게 있어 왔지만, 어떻든 ‘에흐예‘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맞다. 하나님은 무엇에 의존적이지 않은 분이다.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비로소 존재하는 분이 아니며, 무엇을 통해 의미와 목적을 얻는 분이 아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릴 자신의 이름으로 밝힌 것은 그런데 '에흐예'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15). 이것이 그분의 영원한 이름이며, 대대로 기억할 그의 칭호라고 하신다(15).


하나님은 자신을 어떤 속성이나 능력으로 규정하시지 않고 '관계 속에 서 있는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라 한 사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찾아가 그에게 약속을 주어 그를 불러 내시고 그의 평생을 함께하신 하나님이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백성의 고통을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찾아'와서' 그들을 '인도'하여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시는' 하나님이다(7,8,16,17).


어떠한 것에도 의존적이거나 종속적이지 않으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가운데 있는 유한하고 제한된 인생에게 자기 자신을 묶으시고, 자기의 이름을 그 한 사람에게 걸어 놓으시고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신다'(히11:16). 하나님은 그렇게 묶여진 관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신다.


400년 동안 종 노릇하며 뼛속까지 종살이가 익숙해진 '히브리 사람들'을 건져내어(8)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로 세우시고(18) 그들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는 하나님, '그들의 고통을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근심을 알고, 찾아와 인도하시는 하나님','빈손으로 가게 하지 않는 하나님'(21) – 그렇게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아닌 한 사람에게 찾아가 그들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알리신다.


'사랑, 정의, 의, 성실, 진실, 평화'를 이야기하며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혼자만으로도 충분한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찾아가 그에게 사랑을 베풀고 의를 행하며 성실과 진실로 관계하고 인내와 오래 참음으로 평화를 일구어 내시는 분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신다. '네 탓이야, 네가 잘못한 거야. 네 죄 때문이야' 말하는 것으로 '의'를 확보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건져내어(예수)'(마1:21) '그들과 함께 사시는(임마누엘)' 분이(마1:23) 하나님이다. 그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다(요2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