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장 – 기도 (눅 11:1-13)

 

기도해 대해 가르치기 보다, 예수님 자신 기도하는 자로 사신다(1).

그러자 제자들이 기도에 대해 묻는다(1). 기도에 대한 제자들의 물음은 기도의 방법이 아닌 기도의 내용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는 제자들이 익히 예수님에게서 보고 겪어 알고 있으니 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알려 주신다. 유명한 주기도문이다. 그리고는 한 밤중에 찾아온 친구에 대한 비유와 구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는 아버지에 대한 비유를 덧붙이신다.

                           

한 밤 중에 친구의 집 문을 두드리는 친구는 부끄럽지 않다. 부끄러움은 그 요구를 거절한 자의 몫이다. 이 비유는 강청하는 기도를 하라는 등의 기도의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마땅히 구할 것을 구하라는 기도의 내용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친구라는 관계에 기대지 않더라도 마땅히 되어야 할 일을 구하는 것이 기도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기도의 대상에 대해 가르치신다. 우리의 기도를 듣고 답하시는 분은 다름아닌 우리의 하늘 아버지다. 자녀로서 우리가 구하곤 하는 것은 생선이나 알이 아닌, 뱀과 전갈이다. 마땅히 기도할 바를 따라 기도하는 대신 그 기도를 들어주는 것이 부끄러움인 기도를 하곤 하는 것이 우리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우리의 하늘 아버지임을 알고서 기도하고 있다면, 우리가 그분의 자녀임을 알고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면, 하나님은 구하는 자녀에게 ‘성령‘을 주시고자 할 것이다.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 안에서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성령님과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무엇을 구하든 성령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 기도의 내용과 방법 이전에 이분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자. 기도는 기도에 대해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기도함으로 아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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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 등경 위의 빛 (눅 11:14-54)

 

등경 위의 빛이 비추어야 하는 것은(33) 어두운 세상이 아니라, 먼저는 자기 자신이다(33-36). 눈을 감으면 세상은 어둠이다. 아니 실은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이 어둠이다. 눈을 뜨면 비로소 세상이 보인다.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은 그러나 나의 눈(마음, 생각, 욕망, 감정, 사랑, 분노, 상처...)을 통해 보이는 세상이다. 그 눈이 밝으면 세상이 바르게 보이고, 그 눈이 어두우면 세상이 왜곡되어 보일 것이다.

 

속이 깨끗해야 모든 것이 깨끗하듯(41) 자기 안을 잘 들여다 봐야 밖의 것도 잘 보인다. 속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면서도(39) 손을 닦고 있는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아닌, 예수님이 ‘이상해‘ 보인다(38). 율법이라는 빛을 가지고도(52) 자신 안의 탐욕과 악독을 보지 못한다. 혹은 못 본체 한다.

 

탐욕(하르파게-탈취)이든 악독(포네리아)이든 다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스도인은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내려 온 자들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파테마)과 탐심(에피튀미아)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이다(갈5:24). 죽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자기‘로서 죽고, ‘성령‘으로 사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갈5:25). 하나님 나라가 나를 사로잡고(20) 내가 믿었던 무장을 해제하고(22) 내가 탈취하여 가졌던 것들을 돌려 놓는 것(22) –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당신의 지혜를 듣고(31) 내게서 돌이켜 당신께로 향하게 하소서(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