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누가복음 1장 – 가난한 자들의 노래 (눅1:1-80)
사가랴 -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18)
마리아 -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의 기쁜 소식을 듣고서 사가랴와 마리아가 보인 반응은 “어떻게 그런 일이 나와 같은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였다. 그들의 반응은 불신앙이 아닌,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분명한 인식의 표현이다.
날마다 거울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정작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거울을 보면서도 기억 속의 모습을 겹쳐서 보거나 자신의 바람을 투사시켜 자신을 보곤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선택하신 대상은 한편으로는 이미 늙어 소망이 없는 사람이고, 한편으로는 아직 어려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한쪽은 이미 기대와 소망이 좌절과 절망이 되고, 그래서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삶의 자리에 선 사람들이고, 한쪽은 아직 한 번도 그 길을 걸어가지 않아 감히 꿈조차 꿔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들은 ‘늙고',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이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그들에게 재차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주며 그 약속을 확인해 준다.
자신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그러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가운데 마침내 일어나게 되었을 때 이들은 하나같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어조로 찬양한다.
마리아 –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46,47,52,53,54)
사가랴 –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78-79)
찬양 가운데서 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가난하고 비천하며, 굶주렸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 가운데 앉아 있었으며,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맞다. 그들은 바로 그런 상황 가운데 있었다. 어디 그들뿐이랴, 그렇지 않은 자 누가 있으랴! 그러나 '자신은 가난하고 비천하며 부끄럽고 굶주려있으며 어둠 가운데 앉은 긍휼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고백할 자 또한 누가 있으랴?
스스로 가난한 줄 아는 자, 스스로 부끄러움 가운데 있음을 아는 자, 그리하여 "어떻게 그런 일이 나와 같은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자, 복음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확인하고 있는 자들에게 전해져 기쁨을 낳는 좋은 소식이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25) – 엘리사벳의 짧은 노래처럼 나 또한 마리아와 사가랴의 곡조와 음률에 맞춰 노래하련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주께서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