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1~22장 – 직무를 감당하다 (삼상 21:1-22:23)

 

21장 첫 부분에서 다윗은 여호와의 장막이 있는 놉 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로 도망하여 그곳에서 피난처를 발견한다. 거기서 다윗은 먹을 것과 무기를 얻는다. 22장 마지막 부분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은 놉 땅을 떠나 다윗에게로 도망하여 그에게서 피난처를 발견한다(22:23). 다윗 곁에서 그는 안전함(‘미슈메레트‘)을 얻는다.

 

‘안전’으로 옮겨진 ‘미슈메레트’는 ‘지키다’(‘샤마르’)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직무(의무, 지켜야 할 것, 봉사)’를 나타내는 용례로 제일 많이 사용된다 (레8:35;민1:53;느12:45;겔44:15). 제사장(레위인)이 여호와의 집에서 자신의 직무를(‘미슈메레트’) 잘 감당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 곁에서 안전함을(‘미슈메레트’) 얻는다(민1:53;3:5-10;cf.겔44:15).

 

도망자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길 간구한다. 저간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히멜렉은 다윗의 요구를 들어준다. 아히멜렉은 지혜롭게 행한 것이었을까? 이 일로인해 아히멜렉과 그 집은 (아비아달을 제외하고) 사울에게 죽임을 당한다(22:18). 그는 제사장의 직무를 제대로 감당한 것이었을까? 그의 죽음을 엘리에게 내려진 심판의 성취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아도니아 편에 섰던 아비아달의 제사장직 박탈에 대해 성경 기자가 엘리에게 내려진 심판의 성취라 평가하는 것과 달리(왕상2:27) 이곳에서 성경기자는 아히멜렉의 죽음을 여호와의 제사장의 죽음으로 읽게 한다(22:17). 그는 자신의 죄나 조상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의 직무를 팽개치고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려 한 사울의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만일 그가 ‘지혜롭게‘(?) 행하여 다윗이 아닌 사울 편에 섰다면, 그리하여 다윗을 여호와의 집에 잡아두고 도엑을 통해 사울에게 소식을 알렸다면, 그렇게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겼다면, 그와 그의 집은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이후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은 정치적 손익 계산을 끝내고 어린 솔로몬이 아닌 아도니아 편에 서지만, 그로 인해 그는 엘리 집안에 내려진 심판을 이루는 자가 되어 제사장 직을 잃고 만다.

 

다윗은 아히멜렉과 그 집의 죽음에 대해 그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22:22). 다윗이 놉 땅의 성막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다윗은 여호와의 집 외에 달리 어느 곳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었을까? 만일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자기 사정을 솔직히 털어놓고 먹을 것과 무기를 구했다면 아히멜렉은 다윗의 요구를 거절하였을까? 아히멜렉은 다윗의 둘러대는 말을 한 점 의심 없이 그대로 믿고 그의 요구를 다 들어 주었던 것일까? 이미 사울이 그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마당에(19:1)?

 

자신을 피난처로 찾아온 아비아달에 대해 다윗은 그의 안전을 지켜준다. 다윗은 도망자 주제에 블레셋에 약탈 당하는 그일라 사람들을 지켜준다(23:5).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한 자, 빼앗기고 빚지고 도망 온 자,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나올 수 밖에 없었던 자 – 다윗과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몰려들고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된다(22:2).

 

내가 지켜내야만 하는 나의 직임은 무엇인가? 내가 마땅히 서 있어야 하는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나는 지금 누구 편에 서 있나? 지혜롭고 능력 있어 보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직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나? 나의 보신을 위해 나 아니면 도울 이 없는 이들, 무시해도 아무 해가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 아비아달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던 다윗처럼, 내게 선대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