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0장 – 요나단, 여호와가 주셨다 (삼상 20:1-42)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3-14)

 

요나단 없는 다윗을 생각할 수 있을까? 요나단이 없었다면 다윗은 그 모진 오해와 억울한 도망의 날들을 그렇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다윗 없는 요나단은 생각할 수 있어도, 요나단 없는 다윗은 생각하기 힘들다.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은 여러 번 명시적으로 언급되는데 반해(18:1,3;19:1;20:17),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사랑은 그 분명한 표현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사울로부터의 본격적인 도망이 시작되는 때에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는다. 요나단이 다윗의 기름부음 받음을 알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는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을 끊어버릴 것과(15) 하나님께서 사울과 함께하셨듯 다윗과 함께 하실 것임을 믿는다(13). 그리고는 다윗의 집과 영원한 언약을 맺는다(16). 죽음과의 거리가 한걸음뿐이라 느끼고 있는 다윗에게 있어(3) 요나단의 이러한 다윗(과 그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말은 그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내딛게 하는 빛이요 등불인 셈이다.

 

요나단이란 이름은 ‘여호와께서(‘예호‘) 주셨다(‘나탄‘)‘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요나단에게 무엇을 주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다윗을 위해 여호와께서 요나단을 내어 주신 것이다(‘나탄‘=‘ 파라디도미‘). 칠십인역에서 헬라어 ‘파라디도미(=넘겨주다)‘는 대개 히브리어 ‘나탄(=주다)‘에 대한 번역어로 사용되는데, 신약에서 ‘파라디도미‘는 대개 ‘누군가를 넘겨주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특별히 죄인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파라디도미‘)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롬4:25;8:32;갈2:20).

 

요나단은 다윗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그를 위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한다. 사무엘상에서 왕권에 대한 상징으로 쓰이곤 하는(15:27;24:5,12) 겉옷을(‘메일‘) 벗어 다윗에게 주고(‘나탄‘), 그의 군복과 그의 칼과 그의 활과 그의 띠 또한 다윗에게 내어 준다(18:4).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네페쉬‘)처럼 사랑한다(18:1,3). 말 그대로 목숨을 다하는 사랑이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은 사실 까닭이 없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호의를 베풀었거나 은혜를 끼쳤기에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은혜를 발견한 것은 요나단이 아닌 다윗이다(3). 다윗이 요나단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했고, 그의 은혜를 입었다. 다윗과 맺은 언약 또한 다윗이 제안하거나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다윗과 맺은 언약의 주도권자는 언제나 요나단이었다(18:3;20:8,16). 요나단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따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 언약을 지켜낸다.

 

스스로 묻는다. 나는 내가 그렇게 신뢰하고 믿는다는 친구를 위해 나의 왕좌를 내어줄 수 있나? 나의 목숨을 내어줄 수 있나? 아니 어느 정도까지나 나의 재산이나 시간을 그를 위해 내어 줄 수 있나? 요나단처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겠다는 결심이 서기보다, 요나단에게서 언뜻 비추어지는 사랑과 은혜보다 더욱 설명할 수 없는 주의 은혜를 입고 있는 나의 오늘을 생각한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갈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