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제사장, 내가 너와 논쟁하리라!(호4:1-19)

- 2012년 6월 13일 수요일

제사장들이 많아 졌다. 백성의 범죄는 더욱 많아졌다(7).

백성이 드리는 속죄제물을 먹고자, 백성의 범죄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는 제사장들이 득실거리니(8)

그들이 많아 질수록 백성의 범죄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땅에, 진실 - 사랑 -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없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 뿐이다(1-2).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말라고 하신다(4). 

제사장들이 지식을 버리고(6), 제사장들이 율법을 잊고(6), 제사장들이 낮부터 취하여 넘어지니(5),

백성들이 어찌 바로 행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하니,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겠는가(6)?

 

키에르케고르의 날지 못하는 거위 이야기가 생각난다.

거위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집회를 갖는다. 지도자 거위가 앞에 나가서 동료들을 북돋는 연설을 한다.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늘을 날 수 있는 자들입니다. 보십시오, 우리에겐 날개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 다니는 거위가 됩시다."

그리고는 연설한 거위부터 하나씩 모두 뒤뚱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지도자 자신이 '지식'이 없다. 지도자 자신이 진실도, 사랑도, 하나님을 경외함도 없다.

지도자 자신이 돈과 연합하고, 우상에 빠져 있다.

지도자 자신이 날지 못한다.

공허한 말들만이 날아다닌다. 그러니 어찌 백성이 진실과 사랑과 하나님 경외를 맛보고, 누릴 수 있겠는가?

 

"너 제사장, 내가 너와 논쟁하리라!"(4)

"내가 네 행위대로 벌하며, 네 행위대로 갚으리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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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행위, 그들의 마음 (호5:1-15) - 2012-06-14 목요일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5:4a)
‘음란한 마음‘(루아흐 제누님)이 그 뱃속에 있고,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5:4b)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이 선언된다(9.10.14).
이스라엘과 유다의 상태는 참으로 기묘하다.
한편 그들은 상처 입고, 병들었다(13). 그들 스스로 자기들의 상처와 병세를 안다.
그러나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는다(cf.15).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교만‘으로 답한다(5).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지만, 그들은 여호와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6).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를 만나줄 것이다“(대상28:9)
호세아의 이스라엘이 소떼와 양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나, 그들은 그를 만나지 못한다. 왜?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대상28:9)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아, 온전한 마음(레브 샬렘)으로 그를 섬기는 것이 ‘여호와를 찾는(구하는) ‘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의 이스라엘은 그 뱃속에 다른 마음이 있다. 하나님을 향한 꽉 채워진 마음이 아닌, 음란의 영이 창자를 채우고 있다.

그러니 소떼와 양떼를 몰고 간들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다.

그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은 그런데 다름 아닌 그들의 ‘행위‘다.

그들의 마음이 아닌 그들의 행위가 그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4).

 

행위는 힘이 있다. 아니 행위가 힘이 있다.
사람의 행위가 사람을 에워싼다(7:2b).
사람의 마음은 혹 자기 행위를 잊어도(7:2a), 그 몸은 자기의 행위를 기억한다.
행위가 사람을 에워싸 그의 시야와 마음의 길을 좌우한다. 행위가 행위를 조건 짓는다.
첫 사람 아담의 행위가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막았다.
참 사람 예수의 행위가 하나님께 가는 길을 열었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찾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15a)
그의 얼굴 앞에서 교만으로 답하던 자들이, 그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찾으리라“(15b)

하나님의 이 ‘소망‘에 응하는 ‘행위‘로, 삶을 채운다.
첫 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그런 날들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