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호1:1-9)

2012년 6월 10일 주일

그 이름의 뜻이 '구원'인 호세아 선자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1).

호세아는 여호수아의 본명이다. 모세가 호세아(구원)를 '여호수아(여호와가 구원이다)'라 부르면서 여호수아가 그의 이름이 되었다(민13:16).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도 호세아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면서도 이스라엘의 '구원(호세아)'이 될 수 없었지만,

예수(여호와가 구원이다)는 이스라엘의 참된 왕으로서 여호와의 백성을 구원한다.

 

구원자 하나님의 긍휼(루하마), 백성이라 할 수 없는 자들을 돌이켜 마침내 백성(암미) 삼고야 마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인 호세아는

그러나 너는 내 백성이 아니다(로암미)(9),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로루하마)(6), 심을 대로 갚아 줄 것이다(이스라엘)(4)는 선포로 시작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힌트는 이미 나와있다. 예후의 집에 대한 심판 선언이다(4).

예후의 집은 오므리-아합 왕가를 멸하고 세워진 왕조이다. 오므리-아합 시대에 공적으로 섬겨지던 바알의 단을 헐고, 바알 선지자들을 제거하며 예후의 집은 등장한다. 유다의 요시야가 했던 개혁에 버금가는 개혁을 진행한다. 그러나 예후의 집은 여로보암 1세의 길을 떠나지 못한다.

예후에 의해 파괴되었던 바알의 집은 4대가 지나 여로보암 2세의 재위 시절, 다른 형태로 온 이스라엘에 다시 창궐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양을 갖추되 속은 물질 숭배에 젖어 남편을 둔 여인이 정부를 두듯, 아내를 둔 남자가 정부를 두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물질과 풍요에 마음을 주고, 몸도 준다. 음란....

 

개혁이 그 뿌리를 건드리지 못할 때, 근절되지 않은 자리에서 새로 일어나는 싹들은 더 교묘하고, 더 무성하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양은 가지나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로암미).

용서를 구하면서도 죄악된 삶의 모습에서 떠나지 않는 그들은 용서를 바랄 수가 없다(로루하마). 

그들이 심은 대로 갚음 받을 수 밖에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이스르엘)?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내실 것인가? 호세아를 따라가보자. 하나님의 말씀이 낳는 변화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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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정점에서 (호1:10-2:13)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너희 어머니는 내 아내가 아니다(2:2). 그러니 나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다(2).

너희는 그녀의 자식이다(4). 그러나 너희는 음란으로 낳은 자녀들이다(4).

 

하나님의 한탄, 고소, 재판의 선고가 들려온다. 그는 지금 검사이고 또한 재판관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으로 삼는 순간, 그들은 종이 되고 말았다.

소유라는 '바알(주인)'이 만드는 결핍에 매이는 게임에 사로잡혀, 받은 것에 대한 감사, 주어진 것에 대한 인정, 미래를 담고 있는 현재를 놓치고

받은 것에 대한 망각, 주어진 조건에 대한 불만, 미래를 위해 포기되는 현재를 채우느라 곤비하다. 가난하다.

여로보암 2세의 '풍요의 시대'는 그러니 참으로 빈곤한 시대였다.

여로보암 2세의 시대를 열왕기는 이렇게 적는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음이라."(왕하14:26)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데, 마음의 고난이 극심하다.

매인 자는 없는데, 놓인 자 또한 하나도 없다.

재물은 많아 넘쳐나는데, 이스라엘을 도울 자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그런데 그 시대를 불쌍히 여기신다.

 

호세아 2장은 그래서 2장 1절이 아닌 1장 10절부터 시작된다.

히브리어 성경의 장 구분에 따르면 2장은 1장 10절부터 시작되고, 2장 13절에서 일단락된다.

이런 장 구분에 따르면 2장 2절부터 시작된 고소와 심판의 선언은 놀랍게도

"너희는 내 백성이다, 나는 너희에게 긍휼을 베풀 것이(1)"라는 상위 법정의 선고를 전제로 행해진다.

하나님은 그 시대를 불쌍히 여기신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들을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선언한다.(1:10-11)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고, 너희 어미는 내 아내가 아니다!" 맞다. 하나님의 선언은 의롭고 타당하다.

그러나 후대의 이스라엘은 그러한 선고에 앞서

"너희는 내 백성이다, 나는 너희에게 긍휼을 베풀 것이다(1)"라는 하나님의 진심을 먼저 세워 놓았다.

후대의 이스라엘의 장 구분은 호세아의 선고를 그렇게 듣게 한다.

배반한 아내 때문에 가슴이 아픈 것은 그가 참으로 그녀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정부를 따라 나선 여인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자 또한 그분 하나님이시다.

풍요의 정점에서 방황하는 저들을 불러 긍휼을 베풀고자 하는 하나님의 작업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