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못하면 서지 못한다 (7:1-9)

2012-8-14 화요일

자기를 믿을 수 없다면 사람은 서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최면적 자기 신뢰, 맹목적 자기 신뢰는 한 순간 자기 학대와 자기 파괴로 돌아설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면 사람은 서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도움만을 의지한다면 스스로 만들어낸 배신과 배반에 분루를 삼키게 될 것이다에브라임과 아람의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에워쌌다(1). 왕과 백성의 마음이 숲의 나무처럼 흔들렸다(2). 자기를 믿을 수 없었던 아하스는 앗시리아를 의지하여 서고자 했다. 그러나 타인의 도움만을 의지했던 아하스는 배신에 울게 될 것이고(대하 28:20-21), 결국 서지 못하고 넘어질 것이다(cf.7). 당장 눈에 보이는 위협을 앞에 두고, 하나님은 65년이라는 긴 시간을 제시한다(8). 그러면서 스스로 마음을 지키고, 급한 말을 내지 말며, 두려워 말고,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4).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떻게 이런 용기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한 용기는 믿음에서 나온다.

 

견고히 서 있는 자들은 사실 굳센 믿음이 있는 자들이다.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신뢰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다. 자기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는 작은 변화와 어려움에도 흔들릴 것이다. 사람들의 분노에 마음이 졸아들 것이며(4), 회복의 꿈을(3) 소망 중에 지켜내지 못하고 편법을 쓰다 자기 자신을 잃고 말 것이다.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할 것이다‘(9).  자기 신뢰나 타인 신뢰는 남은 자가 돌아올 것‘(스알야숩)이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신뢰에서 시작된다. 데카르트가 확실성의 근거를 의심하는 나에서가 아니라 나를 속일 리가 없는 하나님에게서 찾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 불타고 있는 두 막대기 앞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길 -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65년 안에'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마지막까지 신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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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적 그 너머 (7:10-25)

2012-08-15 수요일

징조를 '구하라'는 이사야의 말에(11) 아하스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는 말로 답한다(12). 아하스는 아람 에브라임 전쟁이 일어난 지금(ca.735/4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두 대적을 멸하고 마침내 유다 최대의 대적이 될(701년 예루살렘 침공) 앗수르 또한 볼 수 없었다. 아하스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판단했다 생각했을 것이다. 날로 강성해가는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형성된 아람-에브라임의 반앗수르 전선에 참여할 것을 거부하고, 앗수르에 줄을 대었던 아하스는 이후 732년 아람의 멸망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죽음을 보며(16) 스스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탁견의 지도자라 생각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적'을 물리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미래의 대적' 앗수르에게 여호와의 전의 곳간을 열어 도움을 '구하면서'도(왕하16:8), '눈에 보이는' 징조를 주겠다는 하나님께는 도움을 '구하지' 않았던 아하스가 볼 수 있었던 것은 한 치 앞이다. 이사야는 아람-에브라임 너머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을 볼 뿐 아니라(17), 교만해진 앗수르를 벌하실 하나님을 본다(10:12). 이사야는 앗수르를 벌할 바벨론을 볼 뿐 아니라, 바벨론을 벌하실 여호와를 본다(14:5). 이사야는 수년, 십수년 안에 일어날 전쟁과 폐허 속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볼 뿐 아니라, 영원토록 함께 하실 메시야의 오심을 본다(14). 마음의 곳간을 열고, 도움을 '구할' 대상은, '함께 하심(14)'이 '보이는 징조'가 되게 하실, 하나님 한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