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있는 시험 (고전 10:1-13)

2012년 7월 18일 수요일

"우리를 덮치는 모든 시험은 다른 사람들 또한 살면서 겪게 되는 것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합니다. 그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 당함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는 시험의 때에 '출구(the way out)' 또한 만드셔서,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13)

바울의 조상들(1), 곧 이스라엘은 본래 바다에서 모세 안으로(!) 세례를 받고(2), 영적인 음식을 먹고(3), 따라다니는 반석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영적인 물을 마셨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악한 욕망을 따라(6), 우상숭배(7)와 음행(8)을 행하고, 주를 시험함(9)과 원망함(10)으로 광야에서 멸망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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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바울은 불의한 자들, 곧 음행하는 자, 우상숭배 하는 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말했다(6:9-10). 이전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러한 삶의 모습 가운데 있었지만, 이제는 주 예수와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함을 받았다(6:11).

그러나 만일 모세 안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신령한 음식을 먹고,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신령한 물을 마셨던 자들이 악한 욕망을 따라 행하다 광야에서 멸망한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 안에서 의를 얻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또한, 만일 그들이 이전의 삶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미 서 있다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12).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음행과 우상 제물의 문제에 대해 '나는 그런 일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앞엔 그렇게 자만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멸망하고 만 조상들이 '본보기'로 서 있으니 말이다(6,11).

우리는 지금 말세를 살고 있다(11). 시대의 끝(텔로스, 목적, 완성)이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11 - us, on whom the ends of the ages have come.). 십자가와 부활로 인한 옛 시대의 끝맺음과 새시대의 열어젖힘이 믿음을 통해 이미 우리 몸 안에 밀려 들어와 있다. 우리의 오늘이 때로 힘들지라도, 그것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걷고 있는 광야일 뿐이다(13). 이스라엘의 광야 길의 참된 목적지였던 그리스도는, 따라다니는 반석으로 이미 그들 곁에 계셨었듯, 우리의 몸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 뒷걸음 치지 말자, 예수 안에서 열려진 새시대의 무한한 지평 - 그 신비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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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 (고전 10:14-11:1)

2012-07-20 금요일

나는 누구처럼 되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던가? 어려서 나는 누구처럼 되고 싶기보다, 누구와는 다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누구보다 나은 사람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나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

 

나의 모방자(미메테스)가 되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의 (모방자가) 되었듯“(11:1)

모방은 요즘 별로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강요 받는 세상이니 말이다. 물론 모방이 겉모습만 흉내 내는 위선이 되는 것은 한 걸음뿐일 수 있다(Platon). 그러나 모방본을 따름이라면, 그것은 능력을 갖추는 것이 된다.

 

요즘 내 둘째 딸은 끊임없이 첫째 딸을 모방한다. 무슨 말을 하건, 무슨 행동을 하건 그대로 다 따라 한다. 그렇게 따라 하면서 어느 순간, 말도, 노래도, 춤도, 놀이도 자기 것인 양 능숙하게 하는 것을 본다. 모방 없이 커온 사람은 없다. 지라르는 모방이 인간의 1 욕망이라고 한다.

 

누구를 모방하는가? 무엇을 모방하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기를 모방하라고 한다. 물론 바울이 모방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그들의 최종 모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처음부터 그렇게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먼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바울부터 따라 살아야 한다.

 

나는 요즘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낸다. 누구 누구의 이론을 따라 익히고, 분류, 정리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하다.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 여러 학자들이 자기의 평생을 들여 정리한 생각들을 따라잡고, 나의 자리를 만드는데 나는 이미 나의 한계를 넘어가는 에너지를 쓰고 있다. 모방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 이틀로 되는 일이 아니다. 3… 3년을 열심히 학자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마침내 바울을 따라다닐 날이 올 것이다.

 

예수의 모방자가 되기 전에 먼저 바울의 모방자가 되어야 한다면, 바울의 모방자가 되기 전에 먼저 바울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방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내 곁, 더 가까이 있는 자들로부터

 

모방(미메시스) - 예술과 삶의 출발점이자 종착점.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모방자(미메테스) 되십시오“(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