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삯, 나의 자랑 (고전 9:1-18)

2012-07-16 월요일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고린도에서는 더욱더, 스스로 돈을 벌며 복음을 전했다(6). 하다못해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아야 한다면, 그리하여 일할 때 그 먹는 것을 막지 않아야 한다면(9), 자기 돈을 내고 복무하는 군인이 없고 오히려 돈을 받으며 복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면(7), 복음을 전하는 자가 그 하는 일로 먹을 것을 받는 것 또한 마땅하다 할 것이다(14). 그러나 바울은 그 마땅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자비량하며 복음을 전했다. 복음이 방해 받지 않기를 바랬다(12). 바울에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권세를 주겠다는 것이 복음이다. 말도 안 되는 사기 같은 소식이다. 그러한 복음의 복음 됨을 유지하기 위해, 바울은 마땅한 자기의 권리인 을 받기를 포기하고, ‘받는 자가 아닌 오직  주는 자로서 평생을 살고자 했다. 그러한 삶에 대한 자랑(고후11:10) 그의 삯이었다(18).

 

얼마 전 21년간의 사역을 마치신고 은퇴하신 한 목사님은 지난 수년간 무료로 침을 놓아주며 많은 이들을 섬겼다. “내가 통증 치료에는 탁월해! 여럿 고쳤어라고 자랑하시는 그분의 행복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 또한 행복했다. 그 자랑이 목사님의 삯이었고, 바울의 삯이었다. 나는 그런 이 있는지, 그런 자랑이 있는지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사기 같은, 믿을 수 없는, 은혜를 주시는당신처럼, 나 또한 주는 자로 살고 싶습니다. 나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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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와 자유 (고전 9:19-27)

2012년 7월 17일 화요일

절제와 자유는 서로 상반되는가? 아니, 절제할 수 없는 자유란 자유가 아니다. 스스로를 묶을 수 없는 자유란 누림이 아닌 오히려 매임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기에,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19). 그러나 이러한 자유의 섬김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모든 자가 다 상을 받는 것이 아니고(24), 절제와 인내와 성실로 훈련하고 또 훈련한 자만이 승리의 영광을 얻듯, 복음의 사도로서 부름 받은 바울 또한 썩지 아니할 영광을 위하여(25) 스스로의 몸을 쳐서, 자신을 복종시키는 싸움을 날마다 하고 있다(27). 그러니 자유는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 교회는 음행과 고기를 먹는 문제(우상 제물)등으로 나툼과 나뉘어짐이 있었다. 각자 나름의 논리적 이유들을 가지고 행하고 있었으나, 아무도 자기가 발을 담그고 있는 그 일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스스로 절제 할 수 없었고 또한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절제를 연습하기 보다, 자기 방어와 자기 정당화의 논리를 연습하고 있었다.

 

약간의 유익이 있는 육체의 연습과 더불어 모든 일에 유익이 있는 경건의 연습(귐나시아, 딤전4:7-8)을 통해 복음의 참여자(쉰코이노니아)가 되고자 달려갔던 바울(23), 존재 자체가 복음이었고, 삶 자체가 복음이었던 운동선수 바울의 뒤를 바짝 따라가야 할 것이다. 함께 달리는 동료들이 주위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