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질투의 하나님, 그의 의로우심 (신 6:11-25)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여러 사람 앞에서 혼인 서약을 한다. ‘한평생 길이 사랑하며, 귀중히 여기고, 기쁜 때나 슬픈 때나 변치 않고,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굳게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본문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마치 혼인 서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짓지 않은 집과 자신이 준비하지 않은 것을 함께 누리는 공동의 삶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맹세를 다시금 확인하신다. 그리고 함께 살아갈 이스라엘에게도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귀중히 여기고, 기쁜 때나 슬픈 때나 변치 않고 그분만을 의지하고 살아갈 것을 맹세하라고 하신다(13).
하나님은 스스로를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신다. 자기 말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데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다른 어떤 것도 끼어들 수 없다는 데에 방점이 있다.
혼인 서약에서 신랑 신부가 서로 약속하는 것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서로에게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결혼은 내게 쓸모 있는 어떤 존재와 사용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와 함께 평생을 살겠다고 하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먼저 그 맹세를 하셨고, 지금껏 그 맹세를 지켜 오셨다.
이방 신들에게는 이런 질투가 없다. 여러 신들을 한꺼번에 섬기거나, 섬기는 신을 갈아타는 데 이방 종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신들과의 관계는 영원히 사랑하며 살겠다는 결혼 관계가 아니라, 상호간의 필요와 조건이 만족될 때에 유지되는 고용계약과 같기 때문이다. 여기에 질투가 있을 이유가 없고, 평생의 헌신이 요구될 필요도 없다. 어느 민족이 신을 잘 섬기고 그의 필요를 채워주면 신은 그들에 대한 대의를 다할 것이나, 그렇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다른 민족으로 갈아타면 되는 것이다. 그 신이 자신들의 요구를 잘 들어주고, 필요를 채워주는 한 그를 섬기겠지만, 그렇지 않다 느낄 때에는 언제든지 다른 신으로 갈아타거나, 다른 신들을 함께 섬기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그 둘은 특별하다. 그 둘 사이에는 질투가 작용하고, 서로에 대한 영원한 헌신과 사랑이 요구 된다. 이 둘 사이에는 그 어떤 것도 끼어들 수 없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여, 그와 평생을 함께 하시기로 서약을 하셨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신실하지 못함과 다른 신을 따라 갈 것을 이미 내다보고 있다(31:16ff.). 그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흩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은 다시 돌이켜져 하나님께 나올 것이다. 하나님은 목이 곧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때로 진노하시며(31:29) 때로 얼굴을 가리시겠지만(31:18), 재앙의 날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계심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4:16,출17:7;신31:17). 그는 이스라엘을 흩어진 모든 곳에서 다시 찾아 모으실 것이다(30:3). 이것이 하나님의 의로움이며, 그의 자비가 우리를 의의 자리에 세우실 것이다(6:25LXX).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