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는 알았고, 베드로는 몰랐다 (사도행전 11장 1절~18절)

 

13...‘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 불리는 시몬을 청하여 와라 14 그가 너와 너의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너에게 말해줄 것이다'...

 

고넬료는 알았고, 베드로는 몰랐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기까지 무슨 일로 고넬료가 자신을 불렀는지 알지 못했다.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을 불법으로 생각하던 그가 이방인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줄 소망으로 고넬료의 집에 갔다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다. 오죽하면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도들이 이방인과 식사를 했다는 이유로 베드로를 비난했겠는가? 당시 유대인 교회는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진 사건도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베드로는 자기를 부른 자가 다름아닌 백부장이고, 나름 경건하며 유대인에게도 칭찬받는 사람으로 그가 소개되기도 하며 또 하나님께서도 환상까지 보여주며 ‘의심 말고 가라‘고 하시기에 그의 집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방인 선교에 대한 기대로 떠난 길이 아니었다.
그런데 고넬료는 그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천사의 말을 들려준다. “그가 너와 너의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너에게 말해줄 것이다!“(14)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그로 말미암는 죄의 용서 이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방인들을 앞에 두고 그가 일찍이 유대인들 앞에서 했던 구원의 길을 간략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문장이 엉망이다. 생각이 복잡하고 할말이 엉킨다. 단 한번의 상상조차 해볼 수 없었던 장면 속에 자기가 놓여 있는 것이다.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는다고 모든 선지자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라고 그가 말할 때에 그의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한다. ‘경건하여 구제하고 의로웠던‘ 고넬료에게만이 아니라 베드로의 말을 듣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

이방인과 함께 식사했다는 비난에 대해 베드로가 준 대답은 고넬료의 겅건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경건에 대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고넬료는 이방인 중에서 보기 드물게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위의 유대인들에게서도 칭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처럼 하루에 세 번 기도합니다. 그러니 너무 나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하나님도 그런 고넬료이니 그에게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닙니까?“라고 베드로는 말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했고, 교회가 그 말에 수긍했다면, 그것은 어줍잖은 유대적 경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주셨습니다.“ – 베드로의 이 말에 구원의 길이 있다. 고넬료의 경건이나 베드로의 순종이 역사의 새 장을 연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용서로 구원받은 교회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복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고넬료 사건을 통해 그들 자신 안에 높아진 구별의 담을 헐며 역사의 새로운 장으로 교회를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라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 그렇다, 하나님 그분이 친히 일하시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