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시몬, 그 평가에 대한 유감 (사도행전 8장)

 

빌립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마법사 시몬은 돈으로 성령의 권능을 사려는 시도로 인해(행8:19) 이후 기독교 역사 내내 혼합된 신앙인의 대표로 언급되는 불명예를 겪는다. 하지만 위 클레멘스 문서에서 마법사 시몬은 베드로의 정통적 가르침을 왜곡하는 자로서 실제로는 사도 바울을 대신하여 공격을 받는다. 그러니 최소한 위 클레멘스가 읽혀지던 공동체 내에서는 마법사 시몬 보다 사도 바울이 더욱 바른 가르침을 왜곡하는 자로 이해되니 시몬 입장에서는 그나마 덜 외롭다 할 수 있을까?

시몬의 신앙이 공격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돈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사려고 하거나, 사도의 기도에 기대려는 생각 등은 공격 받아 마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였을까?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며, 그들 또한 방언을 말한다. 그 때 마법사 시몬은 사마리아 성도들의 신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빌립의 전도를 받고 복음을 믿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시몬의 신앙과 다른 신앙을 가졌을까? 이들은 시몬을 추종하여 따라다녔던 자들이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시몬은 이제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이 임한 공동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아니었을까? 시몬은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게 하는 권능을 돈으로 사려 한다.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은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나름의 인과율로 살아왔던 자가 과연 하루 아침에 은혜의 메커니즘을 믿음으로 수용하고, 은혜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제자들은 어땠는가? 예수를 따라다니며 그들이 꿈꿨던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였던가? 보좌 좌우편의 권좌를 바라던 제자들은 언제부터 십자가의 잔을 마실 준비가 되었던가? 변화산에서 내려와 귀신들려 넘어지는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우리는 왜 하지 못했습니까?‘라며 권능을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소유물처럼 여겼던 제자들은 또 어떠한가?

시몬의 신앙을 매도하고 그런 자는 신앙의 길에 분깃이 없다고 손쉽게 선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무수히 그러한 선고를 받는 정죄의 자리에 서야만 했을까?

마법사 시몬에게서 시몬 베드로는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우리는 다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 무엇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주여 나로 명하여 물위를 걸어오게 하소서. 주여, 다 주를 버려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그 때에도 지금처럼 알았다면...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실패와 좌절을 겪고서 오늘 이 자리에 선다.

악독이 가득한 자는 신명기에 따르면 시몬만이 아니라, 사실 언약을 맺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고, 불의의 줄에 묶여 있던 자는 시몬만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하던 바요나 시몬 또한 그러했다.

참된 종교에 대해 공부하고 배운다고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참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한 걸음도 갈 수 없는 길이 믿음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