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 고넬료의 경건, 그 평가에 대한 유감

 

고넬료는 ‘경건하고 온 집안 사람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행10:2). 그는 그의 집 하인 또는 병사에 의해 ‘의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유대인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 소개된다(행10:22). 그는 백성을 구제하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던 사람이었다(행10:2).

웬만한 유대인이나 오늘날의 우리보다 더 낳은 경건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방인 선교의 첫 수혜자가 됨에 있어 그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 또한 그런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웬만한 유대인들, 늘 구제와 기도와 금식으로 경건을 연습하고 살아왔던 유대인들의 경건은 그의 경건에 비해 어떠한가?

고넬료의 경건 속에서 그가 섬기던 하나님은 어떤 종류의 신이었을까? 구제와 기도, 선행을 행하며 그가 신 앞에서 품었던 마음의 소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환상 가운데 천사의 말씀을 듣고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무는 베드로라는 시몬을 부르러 사람을 보내놓고, 자기 친척과 친구들을 모으고서 고넬료가 듣기를 원했던 신의 말씀은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너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으니 너는 이제 큰 선물을 받고, 지금보다 더 큰 명예를 얻을 것이다...라는 축복? 또는 너의 기도와 구제가 비록 훌륭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 참된 경건의 길을 가려면 이런 수행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노하우의 전수?

베드로가 들려주는 예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고넬료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을 것이다. 베드로의 짧은 복음 제시는 그가 유대인들에게 선포했던 내용의 요약 판과 같은 것이다. 사전 지식이 없다면 알아듣기 매우 어려운 말들이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그들이 반응한다.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고, 그들 또한 (아마도 아람어로) 방언을 한다. 고넬료나 베드로나 그 누구도 상상한 적이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경건이나 능력이 아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이미 3장에서 베드로의 입을 통해 분명히 말했었다. “어찌하여 이 일을 놀랍게 여기십니까?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우리를 주목합니까?“(행3:12)

어디로 갈지 몰라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기도해도 더듬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다. 우리의 경건이나 능력, 그 고단한 삶의 상상력이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길을 나사렛 예수가 우리에게 열어 주신 것이다. 그 십자가와 부활의 길, 용서와 평화의 길, 자유와 해방의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