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의 복음 (갈 4:12-20)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1:8,9) - 너무도 강경한 어조로 시작된 바울은 편지는 그러나 이 부분에 와서 흔들린다(20). 흔들림의 이유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이다(19). 바울과 그들의 사랑의 방식은 '서로처럼 되는 것'이었다(12). 그러나 바울이 떠나고 난 뒤, 다른 이들이 들어왔다. 죄인을 위해 스스로 그들의 저주가 되셨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디가고(3:13)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할례를 행해야 한다며 '자신들처럼' 그들을 바꾸고자 했던 '다른 복음'의 사람들이 찾아 왔다.

그러나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나처럼 되셨다“는 것이다(cf.12). 연약한 내게 오셔서, 나와 같은 연약함의 자리에 섬으로, 나의 연약함이 경멸되거나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셨다(14). 나를 바꾸려 하기 보다, 나의 연약함을 함께 겪고자 하셨다(cf.15). 그는 자신을 위해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나를 위해 자기를 바꾸셨다(빌2장). 그는 자기 영광의 전리품이 될 만한 쓸모 있는 자들을 모으러 다니지 않았고(cf. 17),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셨고, 그런 나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cf. 14).

헛된 영광을 구하며 서로 노엽게 하는 자들은(5:26) 아마도 이 복음의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에게 자기가 낳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자랑스럽다(cf.19). 복음은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 곁에서, 그들과 같아지는 것이다. 그들의 자리에 서서, 연약하면 연약한 그대로 사랑하는 것, 아니 그러기에 더욱 천사처럼 영접하는 것(14), 그것이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오히려 전해 질 수 있었던“(1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다. 우리처럼 되라며 누군가를 노엽게 하는 것이 복음이라면 그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다른 복음‘일 것이다(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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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4장 12절-20절 (사역)

 

12. 여러분은 나와 같이 되십시오. 왜냐하면 나 또한 여러분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여러분께 간구합니다. 여러분은 내게 어떤 해로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13.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처음에 내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내)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14. 내 육체 가운데 여러분을 시험할 만한 것이 있었는데 여러분은 (그런 나를) 멸시하거나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나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듯 나를 영접했습니다. 15. 이제 여러분의 축복은 어디 있습니까? 나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능하다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뽑아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면 내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하기에 여러분의 원수가 된 것입니까? 17. 그들이 여러분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의도가 아닙니다. 오직 여러분을 내게서 떼어 내어 여러분이 그들을 향해 열심을 내게 하고자 함입니다. 18. 좋은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언제든지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열심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들을 위한 것입니다.) 19. 내 자녀들이여,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서 그 모습이 갖추어지기까지 나는 여러분들을 위해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20. 그러나 나는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있어 (지금의) 내 목소리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떨어져 있는 지금) 나는 여러분에 대해 어찌할지 당혹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