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장 - 거절할 수 없는 은혜 (갈2:11-21)

 

예루살렘 공회에서 서로 교제의 악수를 나누었던 당사자들이 다시 등장한다. 바울, 바나바, 베드로,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 그런데 그 분위기와 상황은 사뭇 다르다. 이방인들에게 어떠한 짐도 지우지 않기로 한 결정이 있은 지 아마도 그리 오래지 않아, 베드로가 안디옥에 방문한다. 그곳에서 베드로는 이방인 신자들과 자유롭게 식탁 교제를 나눈다(12). 그런데 어느 날 할례자들에게 속한 어떤 이들(12b),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12a) 안디옥에 도착하자 베드로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꾸어 자신을 이방인들과 분리시켰다. 그들과 더 이상 식탁교제를 나누지 않았다.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갈 2:1-10의 예루살렘 공회는 다만 이방인에게 전해지는 할례 없는 복음을 인정했을 뿐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교제에 대한 전망이 없었고, 이후 유대인과 이방 그리스도인 상호 관계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면서 안디옥 사건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러나 2:3에 언급된 무할례자 디도로 인해 이런 가정은 처음부터 무너진다. 디도는 저들과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누었을까? 아니면 위클레맨트 문서가 보여주듯 식탁을 따로 하여 먹었을까? 이쪽이든 저쪽이든 예루살렘 회의는 처음부터 이방인과의 식탁교제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이어지는 바울의 논증을 따르면 당시 디도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누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 예루살렘 교회가 디도와의 식탁교제를 거부했다면 안디옥에서의 베드로의 태도를 바울이 문제시할 근거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고보에게서 왔다는 이들은 4절의 비밀스레 들어온 거짓 형제들과 동일한 사람들인가? 베드로는 왜 이들이 안디옥에 도착한 이후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를 피했단 말인가? 야고보에게서 온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디도가 만일 예루살렘에서 다른 유대인 신자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했다면 지금에 와서 새삼 이방인과의 식탁교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많은 물음들이 물어질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대답보다,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더욱 분명해지는 복음에 대한 이해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진다(21). 의는 율법을 따르는 나의 행위들에서 오지 않고, 나를 사랑하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온다(20). 안식일과 음식규정과 할례를 행하는 등 율법의 요구를 따르는 것으로 의가 만들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것 안에 의가 놓여 있다(19). 율법을 향해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향해 사는 것이 의다(19). 내가 의롭게 되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나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을 향해,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목표이다(19,20). 율법의 행위들을 통해서 어떤 육체도 얻을 수 없는 의를(16), 예수의 사랑 안에서 그와 연합된 자는, 육체로 살면서도 누릴 수 있다(20).

율법을 향하는 데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는 데로, 자기 자신에게서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불안함에서 돌이켜 은혜의 자리로, 두려움에서 돌이켜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는 자리로, 홀로 감당하는 삶에서 돌이켜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나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수 없다!
 

----------------------

갈라디아서 2장 11절-21절 (사역)

 

11.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 그가 잘못 행했기에 얼굴을 마주한 채 나는 그에게 반대했습니다. 12. 왜냐하면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그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해왔는데, 그들이 오자, 할례자들로부터 온 그들을 두려워하여 물러가서 자신을 (이방인들에게서) 분리시켰기 때문입니다. 13.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 또한 그와 더불어 외식을 하였고, 심지어 바나바조차 그들의 외식에 동조하였습니다. 14. 그러나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걷지 않는 것은 내가 보았을 때, 나는 모든 이들 앞에서 게바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자신)이 유대인임에도 유대인처럼 살지 않고 이방인처럼 살더니, 어찌하여 당신은 (지금에 와서)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라고 강요하는 것입니까? 15. 우리는 유대인으로 태어났고 그리하여 이방인 죄인들이 아닙니다. 16. [그러나] 사람은 율법의 행위들에 의해서 의롭게 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율법의 행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해서 의롭게 되어지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들에 의해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되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어지고자 하는 우리들 자신이 죄인으로 발견되었다면,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죄의 종이란 말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18. 왜냐하면 만일 내가 무너뜨린 이것들을 다시 세운다면 나는 나 자신을 범법자고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9.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향해 살고자 나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나는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20.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며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살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준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율법을 통해 의가 (온다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