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킬 (Kiel)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州)의 주도(州都).

위치: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州)

인구: 24만 5567명(1999)

독일 북동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주도(1945~)이자 항구도시.

킬 운하의 동쪽 끝으로, 발트 해의 서쪽 내해인 킬 협만의 양안에 자리잡고 있다. 일찍이 10세기에 사용되기 시작한 킬이라는 지명은 '협만' 또는 '샘'이라는 뜻으로 앵글로색슨족의 킬레(kille : '배들을 위한 안전한 장소'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242년에 세워졌고 공동으로 무역을 보호하기 위한 협정인 뤼베크 법을 받아들였다. 1284년 한자 동맹에 가입했으며, 14세기에는 추가적인 무역상의 특권을 얻었다. 1773년 덴마크의 일부가 되었는데, 덴마크는 킬 조약(1814)에 따라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할양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나머지 지역들과 함께 1866년 프로이센에 넘어갔고 1917년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주도가 되었다. 1871년 이후 중요한 해군기지가 되어, 1918년 독일 해군 반란의 발생지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연합군 폭격의 목표지였다. 대부분 파괴되었던 이 도시는 광범위한 녹지 공간을 가진 곳으로 재건되었다. 1945년 이후 복구된 사적지로는 장크트니콜라스 교회(1240경)와 후일 러시아 황제 표트르 3세가 태어난 홀슈타인 고토르프 공작가의 궁전(1280경)이 있다. 1665년에 설립된 킬크리스티안알브레히츠대학교에는 유명한 국제경제학 연구소가 있고, 옛 대학교 부지 근처에 예술관과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이 있다. 현대적인 건물로는 시청(1911)·시립극장(1907)·오스트제할레(전시관 겸 의회당, 1950)와 새로 건립된 대학건물 등이 있다. 1895년에 건설된 킬 운하의 갑문 외에도 방대한 상업용 항구와 요트 시설이 있다. 페리호가 킬의 동안과 서안 사이를 정기적으로 왕래하며 인접 어촌 및 휴양지에 교통 편을 제공한다. 주요산업으로는 조선업과 엔지니어링이 있고, 그밖에 인쇄업·금속세공업·양조업·섬유업 등이 이루어진다. 해마다 6월에 개최되는 킬러보헤(Kieler Woche)는 국제적인 보트 경기이자 문화 축제이다.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Schleswig-Holstein)

독일 북부에 있는 주.

위치: 독일 북부

면적: 15,770㎢

인구: 277만 7300명(2000)

독일에서 가장 북서쪽에 있는 주.

주도(州都)는 킬이다. 남쪽 경계는 엘베강(江)이고, 북쪽은 유틀란트반도의 일부를 차지하여 덴마크와 접하고 있으며, 동쪽은 발트해(海), 서쪽은 북해에 면한다. 또 실트·헬골란트 등의 섬도 이 주에 포함된다. 지형은 홍적빙하(洪積氷河)의 영향이 크고, 대부분이 발트 빙하퇴적지대에 속한다. 동부는 농경지와 숲이 우거진 구릉지로 호수가 많으며, 서부는 저습한 초지(草地)여서 낙농이 성하고, 북해 쪽에는 넓은 간척지가 있다. 북부에 덴마크인(人)의 소수집단이 있다.

이 지역은 복잡한 민족 관계와 지리적 조건 때문에 독일·덴마크 간의 국제분쟁이 끊임없었다. 아이더강(江)을 경계로 주의 북반과 덴마크 남부 쇠네리윌란주(州)를 포함한 슐레스비히지방과 주의 남반, 엘베강과 아이더강 사이의 홀슈타인지방이 1866년 프로이센의 한 주로 강제 통합되었다. 슐레스비히지방은 12세기 이후로 덴마크 공작령이었고, 홀슈타인은 1111년 신성로마제국의 한 주로서 탄생하여 1815년 이후 독일연맹에 속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20년 슐레스비히의 북쪽과 남쪽에서는 분리선거가 있었고, 결과 북쪽은 덴마크에, 남쪽은 독일에 속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지역의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은 서독의 한 주로 편입되었고, 동·서독 통일과 함께 현재에 이른다. 종교적으로는 주민의 약 90 %가 프로테스탄트이고 6%가 가톨릭교도이다.

주도 킬 이외에 소설가 T.만이 태어난 뤼베크, 시인 슈토름의 출생지인 후줌 등이 유명하다. 킬과 뤼베크에서는 조선공업 ·연안어업 등이 성하다.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대략 동부·중부·서부로 나누어진다. 동부에는 산과 호수가 많으며 비옥한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어 독일에서 가장 좋은 밀을 수확한다. 발트 해안을 따라 협만으로 만입되어 깎아지른 듯한 벼랑들이 있다. 중부에는 고지와 퇴석 지역이 있다. 토양이 황폐해서 경작이 이루어진 것은 2세기 정도밖에 안 된다. 서부는 부분적으로 경작이 이루어지는데, 평평하고 습하며 나무가 없는 땅으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호수·제방·연못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습지의 서쪽으로 조수의 영향을 받는 얕은 여울들과 평지가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매립한 뒤 잔디를 심어 목축지로 이용한다. 동해안은 바람·조수·파도·폭풍 등에 방치되어 항상 피해를 입는다. 기후적으로는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받는 곳에 있어 겨울은 온화하며, 여름도 그리 덥지 않다. 높은 습도와 많은 강우량(연평균 760㎜)은 식물재배에 적합하다.





* 북해-발트해 운하 (Nord-Ostsee Kanal)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州)를 가로질러 북해와 발트해를 잇는 운하.

위치: 독일 북부

길이: 98.7km

킬운하(Kiel Canal)라고도 한다. 카이저-빌헬름운하로도 불렸다. 서쪽 출입구는 엘베강(江) 어귀의 브룬스뷔텔코크이고, 동쪽 출입구는 킬만(灣)에 면한 킬인데, 출입구에는 각각 갑문(閘門)이 설치되어 있다.

이 운하는 너비 103m, 깊이 11m이며, 높이 43m의 다리가 7개 놓여 있다. 북해와 발트 해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어주는 가장 짧은 통로이다.

1887~1895년에 건설된 이 운하는 처음에 독일 군함이 북쪽으로 항해할 때 덴마크 반도를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을 덜어주어 주로 독일의 군사적 필요성을 충족시켰고, 1907~1914년에 확장되어 대형 군함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이 운하(당시에는 카이저-빌헬름 운하라고 불렸음)는 독일 정부의 소유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맺어진 베르사유조약(1919. 6. 28)에서 이 운하를 국제화하되 관리는 독일 정부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은 통상적인 치안·항해·위생·관세 규정만을 따르도록 되어 있었으나, 아돌프 히틀러는 1936년 이 조항을 폐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운하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속하게 되었고, 항해 자유를 보장하는 베르사유 조약의 조항이 다시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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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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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 10)